AI도 20대도 아니다, 런웨이를 바꾼 패션 모델들
젊음을 대체한 건 또 다른 ‘새로움’이 아니다. 더 이상 나이를 감추지 않는 중년 여성 모델들이 전면에 등장하며 이번 시즌 런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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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te Moss on gucci
30대에는 아름답고, 40대에는 매력적이며, 그 이후로는 평생 저항할 수 없을 만큼 매혹적일 수 있다.
나이 듦과 함께 변하는 여성의 아름다움에 대해 정의한 가브리엘 코코 샤넬이 남긴 이 말은 이번 시즌 런웨이 풍경과 가장 잘 들어맞는다. 요즘 런웨이 흐름을 관통하는 건 옷이 아니라 모델의 얼굴이다. 정확히는 시간을 살아낸 얼굴들. 희끗한 머리, 깊어진 눈매, 그리고 어딘가 안정적인 걸음. 주름을 지우고 나이를 감추는 데 익숙해진 시대 속에서, 40대부터 70대에 이르는 배우와 모델들이 각자의 시간을 드러낸 채 런웨이 전면에 등장했다. 환상이 아닌 현실, 혹은 우리가 실제로 닿을 수 있는 얼굴들 말이다. 미우미우 2026 S/S 런웨이는 그 변화를 가장 먼저 드러냈다. 앞치마를 두르고,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채 걸어 나오는 배우 산드라 휠러의 모습은 쇼를 넘어 현실적인 장면으로 다가온다. 화려하거나 이상화된 비주얼이 아니라 어디선가 봤던 여성의 얼굴. 어쩌면 어머니이자 할머니였고, 또는 이름 없이 일해온 수많은 여성이었을 그 얼굴. 그 무대 위에는 또 다른 시간이 겹쳐졌다. 1996년 미우미우 S/S 런웨이를 호기롭게 걸었던 밀라 요보비치가 다시 미우미우 런웨이에 등장한 모습은 그가 살아온 세월이 한 장면 안에 압축된 순간을 보여줬다. 가브리엘라 허스트 오프닝을 맡아 런웨이 데뷔를 치른 배우 로라 던도 빼놓을 수 없다. 이는 그저 셀러브리티 캐스팅으로 환원되지 않는다. 수십 년의 커리어와 삶의 결이 쌓인 얼굴은 옷을 입는 동시에 그 옷이 담고 있는 서사를 증폭시킨다. 톰포드 쇼에 선 패션 디자이너이자 모델 수지 케이브가 오랜만에 런웨이로 돌아온 장면 역시 마찬가지. 자신의 브랜드와 삶을 구축해온 그의 귀환은 경력 단절이 아니라 확장의 증거였고, 군더더기 없는 화이트 벨티드 룩 위로 겹쳐진 시간의 밀도는 신인 모델이 흉내 낼 수 없는 우아한 긴장감을 만들어냈다. 캠페인에서도 그는 유혹을 매개로 센슈얼한 비주얼을 뽐내며, 성숙한 관능미를 부각했다.
(왼쪽부터) Christina Chung On Chanel, Susie Cave On Tom Ford, Mariacarla Boscono On AlaÏA, Laura Dern On Gabriela Hearst, Christy Turlington On Michaei Kors, Milla Jovovich On Miu Miu, Tracey Norman On Luar, Stephanie Cavalli On Chanel
2026 F/W 시즌 런웨이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뎀나는 구찌스러움을 탐구하며 1990년대 하우스 뮤즈였던 케이트 모스를 소환했다. 백 라인이 깊게 파인 드레스를 입고 피날레를 장식한 그는 여전히 시대의 아이콘임을 입증했다. 50대를 넘긴 그의 몸은 과거의 복제가 아닌 가장 도발적이었던 시절의 구찌를 완벽하게 오마주했다. 뜻밖의 얼굴도 포착됐다. 파리에서 진행된 컨셉코리아 본봄 컬렉션에 모델로 참여한 홍진경이 그 주인공. 한국 1세대 슈퍼모델의 존재감을 증명하듯, 경험에서 비롯된 여유 있는 워킹과 오라로 무대를 장악했다. “연륜 있는 성숙한 여성들은 제 옷에 완전히 다른 차원을 더해줍니다. 그들은 단순히 아름다운 게 아니라 살아온 삶이 있고, 세상을 경험한 사람들이에요.” 마티유 블라지가 샤넬의 첫 오트 쿠튀르 쇼를 마치고 백스테이지에서 남긴 이 말은 런웨이의 변화를 가장 직관적으로 설명한다. 실제로 샤넬 2026 S/S 오트 쿠튀르 쇼의 오프닝에 선 스테파니 카발리와 50대에 모델 커리어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크리스티나 청은 블라지의 말을 그대로 증명하는 얼굴들이었다. 이 흐름은 더 넓은 층위로 확장된다. 나이 든 여성의 등장에 그치지 않고 범위가 다양한 정체성으로 확장된 것도 눈여겨볼 만하다. 특히 트랜스 여성은 연령의 가시성 자체가 더욱 제한적이다. 존재를 드러내는 것만으로도 배제 대상이 됐던 환경 속에서 커리어를 지속하며 나이 들어가는 모습을 대중에 보이는 경우는 흔치 않다. 그런 점에서 루어 2026 S/S 쇼에 선 트레이시 노먼은 의미 있는 사례다. 1970년대에 활동했던 트랜스젠더 모델이 71세의 나이로 다시 쇼에 오른 모습을 통해 이제 런웨이는 연령과 성별 정체성을 모두 포함하는 방향으로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연륜이 켜켜이 쌓인 얼굴과 태도는 ‘나이 듦’이 아니라, 옷에 깊이를 부여하는 또 하나의 장르가 될 수 있다. 지금 패션이 새롭게 발견한 미는 어쩌면 아주 단순하다. 시간은 결코 스타일의 반대편에 있지 않다는 사실. 오히려 그 자체로 하나의 완성이라는 것. 어쩌면 런웨이는 더 이상 젊음을 동경하는 공간이 아니라 나이 들어가는 과정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를 보여주는 가장 직관적인 곳이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위에 선 여성들은 말없이 증명하고 있다.
아름다움이란 나이가 들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형태를 바꿔가며 계속된다는 사실을. 일상에서도 여성들이 나이 듦을 대하는 방식 역시 달라질 수 있다. 지워야 할 변화로 받아들이기보다, 자연스러운 상태로 바라보는 것. 결국 시간이 새겨진 얼굴과 몸은 관리의 대상이 아니라, 나를 말해주는 가장 솔직한 언어다.
Credit
- 에디터 김성재
- 사진 브랜드·IMAXtree.com
- 아트 디자이너 장석영
- 디지털 디자이너 장석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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