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결혼 꼭 해야 해? 2030이 말하는 현실적인 결혼관

더 이상 '결혼 적령기'라는 말은 없다. 미래를 고민하는 저마다의 '적기'가 있을 뿐.

프로필 by 김미나 2025.08.14

일러스트레이터 ‘Fanny Lng’이 최근 인스타그램 계정에 올린 ‘2025년 밀레니얼 모습’을 보았는가? ‘싱글’, ‘집 없음’, ‘10대처럼 옷 입음’, ‘반려동물 하나, 아이 없음’, ‘목표는 엑셀 시트에 적고’, ‘희망과 오트밀크로 버팀’. 정확히 35세 밀레니얼 여성이자, 결혼 적령기를 지나는 내 이야기다. 어쩌면 이게 2025년 한국에서 살아가는 결혼 적령기 여성들의 현실이 아닐까?


서른다섯, 봄. 뉴욕으로 향하는 비행기에서 오랜만에 <섹스 앤 더 시티>를 틀었다. 목적지가 다름 아닌 뉴욕이었으니, 이보다 더 완벽한 예습은 없을 터였다. ‘캐리’와 친구들이 걸었던 화려한 맨해튼 곳곳을 곧 밟을 거란 사실에 나는 잔뜩 들떠 있었다. 1998년에 첫 방영된 시리즈 <섹스 앤 더 시티>는 뉴욕에 사는 싱글 여성 4명의 일과 사랑, 우정을 그린 이야기다. 다시 봐도 내내 놀라웠던 건, 이들이 하는 대부분의 고민이 2025년 현재에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사실이었다. 어떤 남자를 만나고 싶은지, 이 남자와의 하룻밤이 어땠으면 좋겠는지, 사랑하지만 나보다 돈을 못 버는 남자를 계속 만나도 괜찮을지, 연애와 결혼, 독립과 욕망 사이에서 매번 흔들리면서도 각자 자신만의 답을 찾아가는 이들에게서 왠지 모를 기시감이 느껴졌다. 한국에서 ‘결혼 적령기’라는 애매한 타이틀을 달고 살아가는 나와 내 친구들이 떠올랐으니까.

뉴욕으로 떠나기 전, 고등학교 친구들과의 모임이 있었다. 18년 전, 우리는 같은 교복을 입고 떡볶이를 나눠 먹던 평범한 여고생들이었지만, 어쩐지 우리의 상황은 사뭇 달라져 있었다. A는 올가을 결혼을 앞두고 있었고, B는 자유로운 연애 중이었으며, C는 결혼을 꿈꾸는 싱글이었다. 한남동 브런치 카페에 앉아 주문한 에그 베네딕트를 4등분으로 우아하게 자르던 중, C가 별안간 대학원에 입학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나 결혼하려고.” 30대를 기점으로 각종 소개팅과 미팅을 전전하던 C는 자신과 비슷한 조건을 가진 상대를 만나기 위해 대학원을 선택했다는 것이었다. 결혼 정보 회사도 아니고, 대학원이라니. 처음에는 의아했지만, 이야기를 듣다 보니 점차 수긍이 됐다. 그녀는 소위 한국 사회가 정의하는 ‘정상성’의 조건에서 한 치 모자람 없는 배경을 갖추고 있었다. 단아한 외모에 좋은 대학교를 나왔고, 안정적인 공사에 다니며, 얼마 전 서울 소재의 소형 아파트까지 마련해놓은 참이었다. 모든 것을 갖춘 그녀였지만, 결혼만큼은 쉽지 않았다. “난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나 같은 사람을 원해. 내가 가진 조건과 비슷한 남자를 만나려면 그런 사람이 올 수 있는 환경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 말이 씁쓸하게 들리는 한편, 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종종 사랑의 결합보다 조건의 매칭을 더 우선하는 한국 사회에서의 결혼은 사랑 그 이상을 의미한다. 학벌과 직업, 외모와 나이, 가족과 집안의 배경 등 모든 요소가 마치 스펙처럼 작동하니까. 그리고 그 스펙은 때로 사랑보다 더 강력한 기준이 되곤 한다. 대학원은 그녀에게 새로운 네트워크를 제공해줄 공간이었다. 비슷한 관심사와 비슷한 배경, 비슷한 삶의 궤적을 그려온 사람들과의 자연스러운 만남. 어쩌면 요즘 시대의 가장 전략적인 연애 방식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 그런가 하면, 올가을 결혼을 앞둔 A는 결혼 준비로 무척 지쳐 있었다. “결정할 게 너무 많아. ‘예랑(예비 신랑)’? 아무것도 안 해. 나 혼자 결정하고, 나 혼자 전전긍긍하고 지는 아주 천하태평이야.” 결혼은 두 사람이 함께 만드는 새로운 시작이라지만 현실에서 그 무게는 대개 한 사람, 정확히는 여성의 몫이었다. ‘스드메(스튜디오, 드레스, 메이크업)’부터 식장, 하객 리스트, 신혼여행지와 양가 가족 간 조율까지, A는 마치 결혼이 사회적 의무처럼 느껴진다고 했다. 한편, B는 불과 얼마 전까지 결혼 생각이 없었다. 남자 친구를 사랑했지만, 결혼이라는 제도를 생각하면 숨이 막혀왔기 때문이었다. 결혼이라는 것이 단순히 두 사람의 결합이라기보다 두 집안의 만남이라는 사실이 너무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또한 평일엔 각자의 라이프를 즐기다 주말만 함께하는 지금의 관계가 퍽 만족스러웠고, 딱히 출산을 고려해본 적도 없었기 때문에 굳이 결혼해야 할 이유를 찾기 힘들었다. 그러나 시시때때로 결혼은 언제 할 거냐는 주변의 질문을 받을 때마다, 결혼이라는 거대한 파도에 자신도 하루빨리 올라타야 할 것 같은 압박감을 느꼈다고 했다. 그렇다면 나는 어떨까? 내가 상상한 결혼 적령기의 여자는 <섹스 앤 더 시티> 속 ‘캐리’와 친구들이었다. 나도 그 나이쯤 되면, 화려한 싱글 라이프를 즐기고 있을 줄 알았다. 아담하지만 근사한 집에서 때마다 명품 백으로 슬픔을 달래며, 연애하고 싶은 남자와 결혼하고 싶은 남자 사이에서 고민하는… 그런 삶 말이다. 하지만 현실은? 일러스트레이터 ‘Fanny Lng’이 최근 인스타그램 계정에 올린 ‘2025년 35세 밀레니얼’ 속 모습 그대로다. ‘싱글’, ‘집 없음’, ‘10대처럼 옷 입음’, ‘반려동물 하나, 아이 없음’, ‘목표는 엑셀 시트에 적고’, ‘희망과 오트밀크로 버티는 것’까지, 정확히 35세 밀레니얼 여성이자 결혼 적령기를 지나는 내 이야기다. 어쩌면 이게 2025년, 한국에서 살아가는 결혼 적령기 여성들의 현실이 아닐까?

20대 후반부터 여성에게 시작되는 결혼 압박은 30대에 들어 거의 사회적 공습 수준으로 올라간다. 이는 단순히 애정 어린 관심이나 걱정이 아닌, 마치 ‘정상 여자 서사’에서 이탈하지 말라는 무언의 압박과도 같다. 결혼하지 않은 30대 중반 여성은 종종 까다롭거나, 어딘가 결핍된 존재로 간주된다. 이러한 시선은 가족이나 친척과의 모임에서, 때로 직장이나 지인과의 대화 속에서 은은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결혼=안정’이라는 오래된 공식을 들이밀며, 그 공식을 따르지 않는 여성은 어딘가 하자 있는 사람이 된다. 이러한 시선 속에서 여성들은 주체적으로 자신의 삶을 잘 가꿔나가고 있음에도 시시때때로 흔들리게 된다. 그러나 정말 결혼이 인생의 완성일까? 결혼을 한다고 갑자기 사람이 안정적이고, 완전한 인생을 사는 걸까? 그렇지 않다는 걸 우리는 너무 많은 사례를 통해 보지 않았나. 결혼 후 커리어가 단절된 여성들, 시댁과의 갈등으로 고통받는 여성들, 육아와 가사 노동에 소진된 여성들…. 물론 그 안에서 사랑과 연대가 피어날 수 있지만, 그건 결혼이라는 제도가 주는 것이 아닌,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의 노력과 헌신이 만들어낸 결과물일 뿐이다.

오랫동안 ‘결혼 적령기’라는 말은 여성의 삶을 결혼과 출산 중심으로 정의해온 사회적 프레임이었다. 정해진 타임라인이라는 틀 안에서 여성 개인의 욕망과 선택은 종종 지워지곤 했다. 그러나 이제는 결혼에 대한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과거에는 결혼이 정상적인 삶을 위한 필수 코스처럼 여겨졌다면, 오늘날의 결혼은 하나의 라이프스타일 옵션에 가까우니까. 중요한 것은 남들과 얼마나 ‘비슷한 시기에 결혼했느냐’가 아니라, ‘어떤 방식이 나에게 맞는가’이다. 각자의 트랙을 달리는 인생이란 릴레이에서 누가 먼저 가느냐보단 얼마나 나답게 가느냐가 더 중요하다.

소위 ‘결혼 적령기’의 여자들은 지금, 그 어느 때보다도 무수한 선택지 앞에 서 있다. 우리는 결혼을 할 수도, 안 할 수도, 나중에 할 수도 있다. 그래서 이제는 ‘적령기’라는 말을 나이 기준이 아니라, 마음의 기준으로 다시 정의할 때다. 그리고 그 시기는 외부의 기준이 아닌, 나의 내면에서 출발해야 한다. 누군가와 함께 삶을 지속하고 싶은 마음, 그 선택이 나를 더 나답게 만들어줄 수 있다는 확신이 들 때야말로 우리가 결혼을 결심하게 되는 진짜 ‘적기’다.

WRITER_이봄(프리랜스 에디터)

Credit

  • Editor 김미나
  • Illustration By Limoo
  • Art Designer 변은지
  • Digital Designer 김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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