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핫한 건 서양이 아니다? 문학·아트·음악을 삼킨 ‘동양 컬처’
아트, 문학, 음악에 이르기까지 지금 컬처의 중심에 있는 '동양' 컬처의 저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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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초에 내 어린 시절을 호령하던 대륙의 콘텐츠가 있었다. 지금은 사라진 어느 케이블 TV에서 일요일마다 방영한 드라마 <황제의 딸>과 <안개비연가>는 주말을 책임지던 단짝과도 같았다. 18세기 중국 청나라를 배경으로 한, 중국 후난TV와 대만 CTV의 합작 드라마였던 <황제의 딸>은 중국 본토에서 최고 시청률 62%를 기록한 센세이셔널한 드라마였다. 이 붐을 타고 한국에 상륙해 당시 수도권에만 방영됐던 방송사임에도 불구하고 시청률 4%를 달성하며 원조 ‘대만 드라마’의 격을 세웠던 전설의 드라마다. 조미, 임심여, 판빙빙 등의 배우는 그 시절 소녀들의 ‘아이브’이자, ‘블랙핑크’와 같은 존재였다면 그 인기가 체감될까. 이후 영화 <말할 수 없는 비밀> <장난스런 키스>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부터 드라마 <상견니> <치아문난난적소시광> 등 대만 특유의 감성과 분위기를 담은 콘텐츠가 꾸준히 관객과 시청자들의 눈에 들며 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 대만 콘텐츠의 존재감을 견고히 다졌다. 지금 한국에 넷플릭스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있다면, 중국에는 역대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한 애니메이션 <나타지마동요해>가 있다. A24가 배급을 맡으며 다가오는 8월 22일 북미 개봉을 앞두고 있는데, 영어 더빙에 배우 양자경이 참여해 열기가 한껏 더 달아오르는 중. 한편 글로벌 크리에이티브 스튜디오 SLL은 지난 5월 대만콘텐츠진흥원과 MOU를 맺으며 드라마, 영화, 예능 프로그램의 제작을 함께할 예정이다.
지금 가장 힙한 텍스트가 무엇이냐 묻는다면
지금껏 대만의 콘텐츠가 영상 위주로 강세를 보였다면, 올해는 그 양상이 문학으로 확장되는 흐름을 보인다. 지난 6월 개최된 <2025 서울국제도서전>은 주빈국으로 대만을 초청해 역대 최대 규모의 대만관을 운영했다. ‘대만 감성’을 주제로 운영한 대만관에서는 대만의 문학과 독립 출판물을 비롯해 라이프스타일, 역사, 음식, 이미지, 오락 등의 존으로 구성해 전방위의 대만을 소개했다. 지금 ‘힙’한 텍스트를 기민하게 받아들이는 젠지 세대에게도 대만 문학은 통한 걸까? 국제도서전 행사 기간 대만관에서 550건 이상의 판권 미팅이 진행됐다는 소식도 들려왔다. 현재 문학계가 주목하는 건 단순히 대만 문학에 그치지 않는다. 이즈음 김초엽, 천선란, 김청귤, 왕칸위, 청징보, 저우원 등 한국과 중국의 여성 SF 소설가 6명이 ‘신체성’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풀어낸 단편소설을 엮은 앤솔러지 <다시, 몸으로>가 출간된 것. 한국과 중국 작가가 함께한 최초의 협업이라는 점부터 굉장한 의미를 지닌 이 책을 기획한 김이삭 작가는 2023년 한중여성작가대담에서 만난 국내 SF 작가들과 중국의 청징보 작가에게서 한중 교류가 없어서 아쉽다는 의견을 듣게 됐다. “아무래도 언어가 통하지 않으면 교류는 쉽지 않죠. 그렇다고 이대로 교류를 끝내는 건 너무 아쉬웠어요. 전 중화권 문학 번역가라 중국어도 할 수 있고, 동시에 장르 소설 작가기도 해서 국내 SF 작가님들도 알던 참이었으니 내가 아니면 이런 일을 누가 하나 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당시 한중여성작가대담에 참여했던 김초엽·김청귤·청징보 작가님께 양국 동시 출간 앤솔러지를 함께해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했죠. 행사 지원을 진행하신 출판사 래빗홀 최지인 편집자님께도요. 다들 흔쾌히 참여하겠다고 말씀해주셨고, 덕분에 첫 단추를 수월하게 끼울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6명의 여성 작가로 라인업을 꾸린 한중 최초의 앤솔러지를 SF 장르로 특화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어느 나라든 해외 문학은 허들이 높은 편입니다. 특히 문학적 맥락이 세밀하면서도 뛰어나게 담긴 작품일수록 해외 시장 진입이 쉽지 않죠. 번역도 그렇고요. 하지만 장르 문학의 경우 장르성을 통해 좀 더 해외 독자들에게 편하게 다가갈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요. 언어와 역사, 문화가 다르다고 할지라도 장르성만큼은 어느 정도 통용되는 지점이 있거든요. 한국은 중국에 비해 SF 장르가 여러모로 진보적인 편이에요. 반면 중국 SF는 한국보다 보수적이고 여전히 남성 중심적인 장르입니다. 여성 작가도 SF 소설을 쓸 수 있다는 걸 여전히 강조하는 시기에 머물러 있죠. 많은 중국 여성 작가들이 이를 증명하기 위해 힘쓰고 있고요. 이런 상황에서 여성 작가가 쓰는 글을 더 많이 모아서 독자에게 보여줘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여성 작가의 글을 많이 읽고 접한다면 여성 작가가 쓰는 글의 스펙트럼이 넓다는 걸 알게 될 테고, 더는 특정 성별을 기반으로 한 문학적 편견도 가지지 않게 되겠죠.” 필드 안에서 직접 콘텐츠를 기획하고 글을 엮는 현직자에게 이런 흐름이 어떻게 체감되는지 묻자 주저 없는 답이 돌아왔다. “일감 자체가 달라졌어요. 도서 시장은 요즘 중국보다 대만의 영향력이 더 커요. 제가 처음으로 대만 소설을 번역했던 게 8년 전쯤이었는데, 그 뒤로 대만 소설의 번역을 맡기가 참 어려웠어요. 한동안은 중국 웹 소설 위주로 번역했죠. 그런데 지금은 다시 대만 소설의 수요가 크게 늘어나고 있는 걸 체감해요. 제가 직접 기획한 작품도 번역 작업이 밀려 있는 상황이라, 출판사에서 의뢰해주시는 번역 작품은 대부분 거절하고 있죠. 이 흐름이 언제까지 갈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확실히 물이 많이 들어온 건 맞는 것 같아요.” 최근 대만 최고의 페미니즘 작가로 평가받는 류즈위의 첫 단편집 <여신 뷔페>가 한국의 독자들을 찾았다. 8편의 단편을 통해 출산과 양육, 언어폭력, 고부 갈등 등 사회에서 여성이 겪는 부조리를 강렬하게 묘사한 그의 시선은 단번에 국내 독자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으며 국제도서전의 매대를 여러 번 갈아 치우기도! 한국 독자들의 관심과 호기심의 시선 그 중심에 서 있는 류즈위 작가와 화제작 <여신 뷔페> 그리고 대만 문학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여신 뷔페>, 강렬한 제목이다. 페미니즘의 백래시 표현인 ‘여권 뷔페’의 변형이라고 들었는데, 이 작품을 표제작으로 한 이유가 있나?
‘여권 뷔페’는 대만에서 여성을 조롱할 때 쓰는 말이다. <여신 뷔페>를 표제작으로 삼은 건 이 책의 태도를 분명히 드러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대만에서는 이 제목이 ‘여권 뷔페’라는 말과 관련이 있다는 걸 단번에 알 수 있을 테니까. 그리고 ‘여신’이라는 말은 현재 대만 사회에서 너무나 흔하게, 그러나 가볍게 여성을 높이는 표현으로 쓰인다. 이 둘을 하나로 엮은 이유는 결국 여성의 다양한 개성과 노력을 지워버리는 이중적인 시선에 이중적으로 답하고자 함이었다. 적어도 <여신 뷔페>라는 책의 제목을 통해 최소한 내가 ‘여권 뷔페’라는 표현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점을 드러낼 수도 있을 테고 말이다. 그러나 이 태도는 단순히 여성을 조롱하는 이들만을 향한 건 아니다. 오히려 ‘여권 뷔페’라는 공격적인 말을 듣고 난 뒤 자신이 ‘여권 뷔페’는 아니었는지, 자신을 검열하는 여성에게 더더욱 하고 싶었던 말이다. 이 사회엔 억압과 조롱의 말에 반박하는 목소리가 필요하다. 그래야 자신만의 생각을 키워가고 있는 여성들이 지나치게 강력한 가부장제의 힘에 휩쓸려 가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표제작 <여신 뷔페>엔 사회생활을 하며 한 번쯤 겪어봤을 한계와 차별에 부딪히는 3명의 여성 ‘메두나’, ‘릴리스’, ‘아테나’가 등장한다. 누군가에겐 가해자이자, 또 누군가에겐 공모자이기도 한 다양한 여성 캐릭터와 그 서사가 흥미로웠다. 이 시대에 여성 서사가 필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 질문에 답하려면 일단 우리 마음속에 있는 ‘이 시대’가 어떠한지에 대해 먼저 짚어봐야 할 것 같다. 지금 이 시대는 여성 서사가 너무 많아서 조금 줄여도 괜찮은 것일까? 여성의 목소리가 남성과 똑같이 크고 또렷하게 울려 퍼지고 있는가? 그래서 더는 무시당하지 않는다고 할 수 있을까? 만약 그렇지 않다면(난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여성 서사는 여전히 필요한 이야기다. 게다가 여성이 바라는 게 평등과 자유라면 더더욱. 여성 서사는 없어서는 안 되는 유일한 서사가 아니라, 모든 목소리가 당연하게 울려 퍼질 수 있는 공간이 돼야 한다. 비주류였던 목소리가 힘을 얻어 제자리를 찾게 된다면, 아직 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혹은 그 소리가 여전히 작았던 서사들도 훨씬 다원적인 문화 환경을 조성할 수 있게 된다. 여성 서사가 바로 이러한 책임을 짊어지고 있는 목소리라 믿는다.

<여신 뷔페>를 통해 대만과 한국의 독자들에게 그 목소리를 뚜렷하고 명확하게 전달했다고 생각한다. 그 반응은 <2025 서울국제도서전>을 통해 여지없이 이어졌고 말이다. 대만의 문학이, 나아가 대만의 문화가 한국에 뿌리내리고 있는 변화를 체감하나?
정말 신나는 일이다. 대만이 ‘주빈국’으로 선정됐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정치적 권위주의에 맞서는 연대의 메시지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대만 사람에게는 아주 뜻깊은 일이다. 또 한국에서 대만 문화가 주목을 받고 있다는 건, 소설가인 내게 있어 영광과도 같다. 대만은 오랫동안 국민당 정권 아래에 있으면서 국방과 외교, 정치, 군사, 언어, 문화에 있어 자국의 역량을 낮게 보는 경향이 생겨났다. 이러한 흐름이 최근 몇 년 사이에 서서히 바뀌기 시작하며 국가를 자랑스럽게 여기게 됐고, 그 자신감이 창작에서도 드러나게 됐다.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대만의 작품이 한국에서 주목받으면 진심으로 기쁘다. 게다가 대만과 한국은 민주주의의 역사가 비슷하고, 그래서 서로 문화적 영향을 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대만 사람들은 한국 문화를 아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 이와 같은 문화 교류는 양국 사회의 사고를 더 풍요롭게 만들고 더 나은 창작을 이끄는 역량이 될 거라 믿는다. 이 교류가 부디 이번 도서전에만 그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다.

대만의 문학엔 어떤 특징이 있다고 보나? 어떤 점이 한국의 독자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었을까?
대만은 다양한 집단이 함께 살아가던 섬이었다. 식민도 몇 번이나 겪으며 역사적으로든 지리적으로든, 혹은 집단 구성으로든 다원적일 수밖에 없다. 그와 동시에 늘 논쟁과 충돌의 중심에 서 있는 나라기도 하다. 거기에 강대국의 압박이라는 외부적 위협까지 더해지며 대만은 태생적으로 모순이 가득한 곳이라 할 수 있을 거다. 언제든 모락모락 김이 올라올 수 있는 냄비와도 같달까. 다양한 식재료는 서로 부딪히면서 뒤섞이고, 전혀 다른 맛을 낸다. 쉬이 예측할 수 없는, 아주 다채로운 곳. 그렇게 표현하고 싶다. 근래 대만 문학의 흥미로운 지점을 꼽는다면, 대체 뭐가 주류인지 알기 쉽지 않다는 점이 아닐까? 모두가 퀴어 서사를, 여성 서사를 쓰는 것도 아니다. 다들 자기가 쓰고 싶은 이야기를, 자기만의 속도와 열정으로 자유롭게 써 내려가고 있다. 다양한 집단이 혼재된 곳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자각하고 각성하는 흐름이 나타난 뒤로 많은 이가 자신의 정체성을 기반으로 원주민 서사, 농촌 등과 같은 비주류 소재를 쓰기 시작했다. 이처럼 자유롭고 활기찬 창작 환경 덕분에 호기심이 많은 독자는 놀라움을 발견할 수 있게 됐다. 이 매력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다원성이라 정의할 수 있겠다.

대만 밴드 붐은 온다!
문학과 마찬가지로 과거 대만의 음악은 취향 좋은 소수가 ‘디깅’하던 영역이었다면, 이제는 그 취향의 바운더리를 넓히는 매개체로서 주류 반열에 서서히 오르는 중이다. 그 수식에 가장 적합한 밴드는 선셋롤러코스터. 재즈에 기반한 신스팝과 트로피컬 록으로 몽글몽글한 감성을 자아내는 이들은 2019년 내한을 시작으로 조금씩 리스너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더니 혁오와 RM의 ‘샷 아웃’을 받기도. 그 찰나의 인연은 2020년 선셋롤러코스터가 혁오의 ‘Help’를 리메이크하고, 4년 뒤 선셋롤러코스터의 3집 수록곡 ‘Candlelight’에 오혁이 피처링을 하더니 그해 프로젝트 앨범 <AAA>를 발매하며 마침내 세계관 대통합을 이루게 된다. 이뿐만 아니라, 국내 인디 밴드 라쿠나의 ‘춤을 춰요’를 ‘만다린 팝’스럽게 재해석하며 국내 인지도를 높인 웬디 완더, 베이스가 주도하는 매스 록 장르로 독보적인 디스코그래피를 쌓아가는 가오슝 출신의 밴드 엘리펀트 짐, 서정적인 포크 록부터 강한 사운드의 펑크록까지 폭넓은 스펙트럼에 20대의 사랑과 꿈, 일상을 꾸밈없이 노래하는 망고 점프 등 개성 만점의 수많은 밴드가 지척에, 아니 어쩌면 아주 멀지 않은 곳에서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Credit
- Feature Editor 천일홍
- Art Designer 장석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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