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여성이 6 ·3 대선에 관심가져야 하는 이유
광장에 나가 탄핵을 외쳤던 2030 여성 주권자가 6월 3일, 장미 대선에서 다시 연대해야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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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2024년 12월 3일 밤에 대한 전직 대통령 윤석열 씨의 주장이다. 이 말이 마음 어딘가를 건드렸다면, 당신은 분명 6월 3일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오는 대선을 규정하는 단 하나의 문장이 있다면, 나는 감히 이 말을 꼽는다. 사상 초유의 비상계엄을 선포한 윤석열 씨는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정에 나와 이러한 궤변을 늘어놓았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누구든, 2024년 12월 3일 밤은 생생할 것이다. 어제 점심에 뭘 먹었는지는 가물가물해도, 그날만큼은 기억이 강렬하게 남을 수밖에 없다. 총을 든 군인들이 국회로 진입하는 장면을 실시간으로 목격했다. 관련한 심리학 용어도 있다. ‘섬광기억(flashbulb memory)’, 놀랍고 충격적인 순간을 생생하게 지속적으로 기억한다는 의미다. 파면 여부를 최종 결정하는 헌법재판소에서도 직무가 정지된 대통령은 성의 없는 거짓말로 일관했다. 그에 발맞춰 “경고성 계엄”, “계엄령이 아닌 계몽령”이라는 주장이 횡행했다. 그런 가운데 겨우 체포했던 윤석열 씨에 대해, 법원은 ‘날(일수)이 아닌 시간’을 기준으로 해야 한다는 전무후무한 결정으로 구속을 취소해버렸다. 검찰 또한 즉시 항고하지 않으면서 윤씨는 자유로운 몸이 되었다. 반면 그의 임무를 충실히 따랐던 부하들은 구속된 상태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닌’ 내란의 면모를 우리는 아직도 지켜보는 중이다. 그래서 비상계엄 이후 나는 곧잘 상식을 의심하는 사람이 되었다. 때로는 염세주의자가 되었다. 전 세계의 민주주의가 아스라이 무너지는 거대한 조류 한가운데 우리 또한 예외 없이 살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패배감을 마주하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수렁에 빠진 마음을 구해주는 동료들이 있었다. 이들은 거대한 폭력에 맞서 본능적으로 국회 앞으로 한달음에 뛰어갔다. 쿠데타를 일으킨 이에게 당장 물러나라며 응원봉을 흔들고 흥겹게 노래를 불렀다. 수사기관의 정당한 법 집행 위에 군림하는 무리에 맞서 눈 내리는 거리에서 웃으며 밤을 새웠다. 세상은 이들을 향해 ‘응원봉 연대’, ‘키세스단’이라는 자랑스럽고 사랑스러운 이름을 붙였다. 그 중심에 청년 여성이 있었다. 과장이 아니다. 현장에 나가 피부로 느낀 감각이다. 데이터도 뒷받침한다. 서울시에서 제공하는 생활 인구 데이터 분석에 따르면, ‘대통령 윤석열 탄핵 소추안’이 국회에서 통과된 2024년 12월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 모인 시민은 42만여 명이다. 이들의 3명 중 1명이 20~30대 여성이다.
2030 여성은 왜 광장으로 나왔고 행동했을까. 여러 인터뷰와 분석이 나왔다. “그동안 일궈놓은 민주와 자유를 지키고 싶었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게 아름다웠다”, “2030 여성과 기성세대 운동권 사이에 관계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점도 중요하게 보고 있다”, “여성과 노동자, 장애인, 성소수자를 부정하며 탄생한 정부의 종말을 목격하고 싶다.”(<경향신문> 2024년 12월 13일 기사) “인터뷰이로 참여한 여성들에게 첫 집회 시위의 기억을 물었을 때, 절반 이상이 강남역 살인 사건 관련 시위, 불법 촬영 근절 시위 등을 꼽았다. 정치색이 없어도, 지지하는 정당이 다 달라도 내 삶의 안전을 위협받으며 ‘이건 뭔가 잘못됐다’라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달려 나갔던 이들에게 내재된 시민의식이 윤석열 탄핵 촉구 과정에서 또 한 번 발현된 셈이다. 여성가족부 폐지를 정면으로 내세우며 대통령으로 당선된 윤석열의 행보는 여성들의 근원적 불안과 각성된 주체로서의 정체성을 정면으로 건드렸다. 여성들의 분노는 윤석열의 대통령 당선과 동시에 켜켜이 쌓여온 것이었다.”(<시사IN> 2025년 3월 25일 기사)
예견된 일이라는 뜻이다. <시사IN>에서는 일찍이 2021년 대규모 웹 조사 형식의 여론조사를 통해 20대 여성의 정치 성향 등을 분석한 바 있다. 당시 20대 여성 다수는 “나는 약자는 아니지만 차별받고 있다”라고 응답했다. 사회구조 속에서 ‘나와 세상의 관계’를 파악했다. 시스템의 문제에 더 예민하게 반응했다. 당시 20대 남성 다수가 자신을 약자로 인식하는 태도와 대비됐다. 또한 당시 20대 여성에게 페미니즘에 대한 이해는 젠더 영역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분배·노동 등 다른 영역에 대한 자신의 견해와 지지 정당 결정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물론 개별 여성은 각기 다를 수 있지만, 해당 집단의 특성이 그러하다는 통계는 꽤 예전부터 나와 있었다. 그러니까, 이들은 원래 거기 있었다. 보지 않았던 것뿐이다. 어쩌면 2030 여성에 대한 과도한 찬탄은 역으로 2030 여성에 대한 몰이해를 드러내는 건 아닐까. 조명해야 할 것은 2030 여성을 향한 납작한 시선이다. 의도적으로 2030 여성을 변방으로 몰아넣었거나 지우려고 했던 고정관념 혹은 현실이다. 12·3 비상계엄부터 4·4 탄핵 그리고 6·3 대선으로 이어지는 국면마다 보이는 2030 여성은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존재가 아니다. 그렇기에 비상계엄부터 탄핵까지 123일간 이어진 우리의 연대는 2030 여성을 비롯한 다양한 동료들이 서로의 수고에 대해 인사를 나누는 시간이다. 뭉뚱그려 ‘우리 모두의 승리’라고 말하는 것도, ‘2030 여성의 위대한 성취’라는 과한 환호에도 마음을 두지 말자. 누군가 그 수고를 독차지할 것도, 그럴 일도 아닌 것처럼 말이다. 전시도 아닌 상황에서 무장하지 않은 자국민을 상대로 총을 들고 제압하려 한 이들에 맞서 우리는 함께 민주주의와 헌법 그리고 공동체를 지켰다. 그것도 사회적 약자를 배제하지 않으면서, 평등하고 평화롭게. 그 가치는 성평등과 연결되고, 차별과 혐오와 맞서는 일에 가닿는다는 점은 분명하다. 이는 계엄에서 대선까지 이어지는 2030 여성의 연대기에 ‘남태령’을 빼놓지 말아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2024년 12월 21일 낮 12시부터 28시간 동안 남태령에서는 트랙터를 몰며 양곡관리법 거부권에 항의하던 농민들과 윤석열 탄핵을 위해 응원봉을 든 청년들이 만났다. 홍대 ‘오타쿠 파티’에 있다 뉴스를 보고 남태령으로 한달음에 달려온 한 여성은 이렇게 말했다. 자신은 충남 농가의 딸이라며 남태령 연대의 의미를 경험을 빌려 설명했다. “오늘 여러분이 본 트랙터는 농번기에 함께 나눠 쓰는 소중한 기계입니다. (윤석열 정부에 맞서) 우리가 가장 소중한 응원봉을 들고 나왔듯, 농민들도 가장 소중한 기계를 갖고 (거리에) 나오신 겁니다. 농민의 트랙터를 막는 것이 정당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앞으로 뜨끈한 쌀밥, 달달한 막걸리, 제철 농가 먹거리 모두 먹지 마시기 바랍니다. 투쟁!.”(<시사IN> 2025년 1월 6일 기사)
아름다운 이야기는 더 낮은 곳을 향할 때 풍부해진다. 다정한 마음은 더 여리고 약한 존재를 지킬 때 강해진다. 이 애틋함을 우리는 ‘연대’라고 부른다. 누군가는 공감이라고 바꿔 부르기도 하는 그 가치 말이다. ‘사회적 약자’라는 말이 너무 무겁다면 각자 삶에서 언젠가는 한 번씩 가지게 될 ‘마이너리티성’에 대해 생각해보자. 지난겨울부터 다가올 여름까지, 우리는 광장에서 수없이 이 마이너리티성과 조우했고 덕분에 연대와 공감의 지평을 넓히는 경험을 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대선에서도 젠더 이슈가 중요하다. 성평등을 이야기하지 않는 정치는, 자연스레 장애도 가난도 LGBTQ도 말하지 않는 정치로 이어진다. 거꾸로 또 다른 사회적 약자가 지워질 때 여성 또한 비가시화된다. ‘구조적 차별’을 외면한다는 뜻이다.
계엄을 막았고, 탄핵을 이뤄냈으며, 대선을 앞두고 있다. 이 모든 상황을 ‘국민 모두가 함께했다’면, 더더욱 대선 국면에서 다양한 사회적 약자들이 사라지게 둬서는 안 된다. 함께 이룬 성과는 함께 축하하고 함께 나눠야 한다. 그러나 유달리 여성 의제가 사라진 대선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지극히 정치공학적 계산에 바탕을 둔 행보다. 2030 남성이 ‘캐스팅보트’라는 생각으로 표심을 관리하는 모양새다. 정략적이지도, 정당하지도 않은 태도다. 기시감이 드는 장면이 있다. 2022년 대선 당시의 정치권 반응이다. 윤석열-이재명 두 후보의 0.73%포인트 차이 초접전은 20대 여성 표심이 크게 좌우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방송 3사 출구 조사 결과, 20대에서는 성별에 따라 투표 성향이 완연히 갈렸다. 20대 남성은 윤석열 58%, 20대 여성은 이재명 58%였다. 투표 직전까지 윤석열 후보가 크게 이긴다는 예측과는 상반된 결과였다. 여의도에서는 뒤늦게 20대 여성 표심을 탐구했다. 당시 한 토론회의 패널로 참여하며, 실시간으로 달리는 유튜브 댓글을 봤다. “2030 여성의 정치 참여에 대한 분석을 K팝 덕질에만 치우쳐서 언급하는 게 너무 답답했다. ‘덕질’은 지지를 재밌게 오래 끌고 가기 위한 방식일 뿐이고, 알맹이는 다르다”, “여성 차별·혐오에 있어 더 많은 토론·공부가 있었으면 좋겠다. 철학 없이 현상만 쫓아다니느라 언론이 띄워준 ‘이대남 현상’에 끌려다닌 측면이 분명 있었다” 등. 그중 압권은 “우리는 집토끼가 아니라 호랑이다”였다. 스스로 목소리를 내고 판단하며 기꺼이 움직이는 정치적 결사체로서 2030 여성은 자신들을 이렇게 묘사했다. 마치 새로운 유권자 그룹을 발견한 듯 호들갑 떠는 정치권을 향한, 청년 여성의 일갈이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말을 직접 심판할 수 있는 6월 3일이 다가온다. 주권자의 시간이다. 이미 우리가 다 알고 있는 것처럼 너무 많은 일이 일어났다. 다시는 과거로 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 분명 우리는 내란을 종식시킬 것이다. 이 과정에서 청년 여성들이 더 참여해야 하는 건 그래서 당연하다. 함께 만든 시간의 주역이기 때문이다. 또 다른 주역들과 연대해, 과거가 현재를 구한 것처럼 현재가 미래를 구해야 할 시간이 바로 6월 3일이다.
Writer 김은지_(<시사IN> 정치부 기자)
Credit
- Editor 김미나
- Writer 김은지
- Illustration By 유승보
- Art Designer 김지은
- Digital Designer 김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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