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나의 연애 흑역사 모음집, 밸런타인데이 '찐' 러브 스토리
당시에는 '이불킥'이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피식' 웃게 되는, 잊을 수 없는 나의 밸런타인데이 러브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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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10년 전, 20대 초반의 풋풋한 첫 연애를 시작했던 나는 밸런타인데이를 맞아 초콜릿을 만들었다. 멍청했거나 사랑에 미쳐 있었던 나는 초콜릿에, 견과류에, 포장지에… 5만원도 넘는 재료를 이고 지고 사 와서(고작 5만원이라고 생각하지 말아 달라. 그땐 최저임금이 5천원도 안 되던 시절이었다) 남자 친구 초콜릿을 만드는 것도 모자라 그의 부모님 몫까지 잔뜩 만들었다. 하루 종일 초콜릿을 녹이고 버무리고 굳혀서 커다란 박스 하나를 가득 채우고 나니 몸은 고되고 지갑은 텅 비었어도 마음만은 뿌듯했다. 밸런타인데이가 됐고, 나는 자랑스럽게 그에게 초콜릿 박스를 내밀었다. 내가 그에게 듣고 싶은 말은 별거 아니었다. “감동이야”, “고마워” 그냥 그런 뻔한 말이면 됐는데,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우리 누나 건 없어? 누나 임용고시 준비하느라 힘들 텐데 누나 것도 만들어주지”였다. ‘미친 거 아냐?’ 아니, 미친 건 그 따위 소리를 듣고도 당장 헤어지지 않은 나였다. 나는 그놈과 2년을 더 만났고 그놈의 바람으로 다행히 그와 헤어질 수 있었다. 그때의 빡침 때문이었는지, 나는 그다음 연애 때도 그 다다음 연애 때도 단 한 번도 초콜릿을 만든 적이 없다. 두 번 다시는 만들 일 없을 줄 알았다. 10여 년이 흘러 나는 30대가 됐고, 내 곁엔 새로운 사랑이 찾아왔다. 하지만 30대 남녀에게 밸런타인데이는 제과업체의 농간으로, 기분 내고 싶으면 편의점에서 페레로 로쉐 하나 사서 나눠 먹으면 되는 딱 그 정도 날이었다. 그래서 나는 적당한 베이커리에서 적당한 초콜릿을 샀고, 저녁을 먹으며 그에게 초콜릿을 건넸다. 그런데 그도 내게 작은 상자 하나를 내미는 것이었다. 열어보니 직접 만든 초콜릿이었다. 태어나서 원데이 클래스라는 걸 처음 해봤다며, 너는 사탕보다 초콜릿을 좋아하니 만들었다는, 물론 화이트데이도 챙겨줄 거라는 말과 함께 건넨 초콜릿은 울퉁불퉁 엉망진창이었지만 그렇게 사랑스러울 수가 없었다. 10년이 지나서야 나는 그때의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을 그에게 건넸다. “세상에, 너무 감동이야! 고마워.” 내년에는 나도 초콜릿을 만들게 될 것 같다. 다시 만들 결심
— 니주(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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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죽이 잘 맞았다. 둘 다 범생이면서 날라리였다. 저녁밥을 먹을 땐 꼭 반주를 곁들였고 술이 깨는 느낌이 들면 야식으로 싱글몰트에 하겐다즈를 퍼먹었다. 그가 독일 유학 시절에 마셨다는 맥주와 사이다와 무언가를 섞은 메슥거리는 음료를 마시며 <샤이닝>을 보다 잠들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새벽 일찍 일어나 출근할 만큼 깔끔한 남자였다. 우리는 서로를 애인이라고 부른 적은 없었지만 연인처럼 밸런타인데이 계획을 세웠다. 이때 나는 토속적이고 퇴폐적인 나의 로맨스 판타지를 처음으로 고백했다. “사실 나 시골 민박집 같은 데서 한번 자보고 싶었어.” 꼭 특별하고 값비싸게 보내야 할 것 같은 날, 아무도 없는 허름한 치킨집에서 오래된 기름에 튀긴 치맥을 먹고 민박집에서 자는 게 더 로맨틱할 것 같다고. ‘누군가 새근새근 잠들어 있는 옆방, 방바닥은 지글지글 끓고 두꺼운 이불 위에서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엉겨 붙어 나누는 몸의 대화. 그러다 이불 끝을 넘어가 고데기 같은 방바닥에 등짝이 데일 만큼 위험천만한 것.’ 이런 흑심을 읊기는 민망했기에, 나는 그가 제안한 한옥과 민가 느낌이 섞인 담양의 한 에어비앤비에 묵는 데 동의했다. 대나무로 둘러싸인 예쁜 집이었다. 아궁이 주변을 투명 천막으로 막은 공간에서 피노 누아, 훈제굴통조림과 바비큐를 즐겼다. 소형 프로젝터를 챙겨 온 그가 아궁이 위 하얀 벽 위를 작은 스크린으로 만들었다. 기대했던 것보다 꽤(?) 로맨틱해버렸지만 기분은 좋았다. 와인을 물처럼 들이켰다. 그가 키스를 하며 신호를 보냈다. 이제 방으로 들어가 나의 판타지를 유감없이 펼칠 때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나의 판타지는 여지껏 판타지로만 남아 있다. 그가 먼저 씻고 나오는 걸 기다리지 못하고 내가 잠이 들어버린 것이다. 패착은 찬 곳에서 술을 마시고 뜨끈한 온돌방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방바닥이 무슨 불판처럼 지글지글해 호떡처럼 들러붙어버렸던 것이다. 아니! 그보다 그가 씻을 생각을 했다는 것부터가 잘못이지. 그렇게 청결하고 이성적인 판단이 가능한 채론 내 판타지는 애초에 성립조차 될 수 없는 것이었으니까. 낯선 온돌방의 윤곽이 드러난 아침에는 영 내키지 않았다. 그렇게 아쉬운 밤이 지나갔고 그와 나는 여름이 되기 전 헤어졌다. 볼장 다 보고 헤어진 남자들보다 아련하긴 하다. 그가 말아준 역겨운 막사 맛이 그립기까지 하니까. 이번 밸런타인데이에는 끝까지 세련되고 깔끔했던 그에게 내 취향처럼 쿰쿰한 카톡을 보내볼까. “자니?” 막사와 민박
— 성지은(프리랜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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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한 살 무렵 영어 학원에서 만나 유독 친하게 지냈던 애는 나한테 여자 친구 상담도 줄곧 했다. 주로 연상의 여자만 만나던 애였다. “걔가 모텔 가자고 두 번 졸라서 갔어. 원래 그냥 진짜 친한 동기 누나였는데. 사귀니까 재미없더라”라면서 “누난 제발 마지막까지 좋은 누나로 남아줘”라고 덧붙였다. 그때는 그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였는데 지금 생각해보니까 ‘내가 너무 눈치가 없었나?’ 싶다. 걔가 군대 가서 나한테 ‘여자 친구(하트)’라고 쓴 편지를 줬을 때도 나는 ‘얘가 날 정말 친한 누나로서 아끼는구나’라고만 굳게 믿었다. 자기 검열은 해도 해도 과하지 않으니까. 그러다가 한번은 아주 추운 겨울이었다. 그 애가 제대 기념으로 당시 가장 핫하던 중저가의 뷔페 ‘애슐리’에 가자고 제안했다. 저녁에 만나서 신나게 뷔페를 먹었는데 너무 푸짐하게 먹었더니 식사 후에 ‘급똥’이 마려운 거다. 이미 식당을 나와 한참 걸은 뒤였고, 겨우겨우 강남대로변의 큰 건물 공공화장실을 찾았는데 휴지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그 애에게 전화를 걸었고 결국 걔가 배꼽을 쥐고 웃으면서 편의점에서 휴지를 사다 줬다. 그땐 ‘카카오톡 송금’ 같은 핀테크도 없던 때라 내가 걔한테 휴지값으로 백원짜리 동전 10개까지 장난 삼아 쥐여줬다. 화장실을 나와 걔가 담배를 사러 간다고 편의점에 들어갔다. 이미 염치고 뭐고 볼장 다 본 터라 나도 따라 들어가서 따뜻한 코코아라도 사달라고 졸랐는데, 걔가 “아, 누나 초콜릿 좋아하지?”라면서 매대에 있는 초콜릿을 종류별로 집어 담배랑 같이 계산한 다음 손에 쥐여줬다. “이거 먹고 또 똥 마려우면 그냥 집에 가서 싸”라는 말과 함께. 설렐 뻔했는데 짜게 식었다. 사실 그 애를 조금 좋아하긴 했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가장 좋아하는 크런키를 아작아작 씹으며 카톡을 이어가던 찰나, 그날이 2월 13일이라는 걸 알아차렸을 땐 너무 늦어버렸다. 그때는 ‘똥까지 텄으니 섹스는 물 건너갔구나’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하니 ‘똥까지 텄는데 한번 자는 게 뭐 대수였을까?’ 싶다. 30대의 내게 ‘이불킥’의 의미는 조금 달라졌다. 나이는 허투루 먹는 게 아닌 것 같다. 그날이 내가 기억하는 가장 로맨틱한 밸런타인데이 이브였던 걸, 똥 싸다 말고 생각하며 여전히 가끔 깔깔 웃는다. 뻔뻔하지 못했던 20대의 로맨스
— 목시(모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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밸런타인데이가 커플이라면 응당 챙겨야 할 기념일 반열에 드느냐, 아니냐를 두고 열띤 토론을 하던 시절이 있다. 나는 ‘강경 반대’파였다. 한국에서 밸런타인데이는 여성이 남성에게 초콜릿과 함께 선물을 주는 날이고, 그에 대한 답례로 화이트데이 때 남성이 여성을 챙겨준다. 이렇게 ‘기브 앤드 테이크’처럼 한 세트로 붙어 다니는 2개의 기념일을 모두 챙겨야 한다는 건 꽤나 번거로운 일 아닌가. 게다가 왜 여자는 초콜릿을 주고도 사탕을 받아야 하는 것인가? 초콜릿이 훨씬 더 고급 디저트고, 사실 내가 더 좋아하는 건 초콜릿인데 말이다. 그렇게 줄곧 밸런타인데이를 챙기는 것에 대해 목에 핏대를 세우며 반대하다 지금의 남자 친구를 만났다. 나에게는 사귀기 전에 꼭 토론해야 하는 몇 가지 관문이 있다. 그중 하나는 ‘각종 기념일을 얼마큼 챙기고 얼마큼 넘어갈 것인가’에 대한 논의다. 여기서 밸런타인데이는 당연히 ‘스루’해야 할 기념일 1순위였다(물론 화이트데이도!). 이에 대해 지금의 남자 친구 반응은 “괜찮아. 나 어차피 초콜릿 못 먹어”였다. 그렇다. 남자 친구는 초콜릿을 포함해 카페인이 들어간 식품을 아예 먹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2월 14일은 다가왔다. 우리의 첫 기념일은 하필 크리스마스도, 100일도 아닌 밸런타인데이였다. 저 멀리 양손 가득 쇼핑백 꾸러미를 든 그를 발견했다. 해맑은 얼굴로 “초콜릿 만들었어!”를 외치던 그. 사실 그는 기념일 챙겨주는 것을 좋아하는 남자였고 내가 밸런타인데이를 건너뛰자고 했을 때부터 ‘그럼 내가 챙겨줘야지’라고 생각했단다. 본인은 먹지도 못하는 초콜릿을 하루 종일 녹이고 굳히며 그의 표정은 어땠을까? 그는 손 편지와 선물도 내밀었다. 선물은 내가 쓰고 있는, 바닥나기 일보 직전인 딥티크 향수였다. ‘그럼 나는 화이트데이에 챙겨줘야겠다’는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새 3월 14일이었다. 시간은 왜 이리 빨리 가는지, 이번에도 나는 빈손인데 그는 또 양손 가득 뭔가를 들고 나를 만나러 왔고, 직접 만든 사탕을 내놓았다. 사탕을 집에서 만들 수도 있다는 걸 이날 처음 알았다. 그 후로도 그는 매번 직접 만든 초콜릿을 건네며 앞으로도 그렇게 하겠다고 말했다. “왜 먹지도 못하는 초콜릿을 그렇게 만들어?” 나의 물음에 그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네가 초콜릿을 좋아하니까 직접 만들어주고 싶었어.” 그날 밸런타인데이 강경 반대파의 마음은 초콜릿 녹듯 사르르 녹았다. 녹다 못해 이제는 밸런타인데이를 기다린다. 매번 솜씨가 향상되는 그의 초콜릿 작품들을 보는 재미도 생겼거든. 밸런타인데이 반대파의 마음이 동한 이유
— 김미나(<코스모폴리탄> 피처 에디터)
Credit
- Editor 김미나
- Illustration By Mingee
- Art Designer 장석영
- Digital Designer 김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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