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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예보? 핵개인 시대? 송길영 작가가 말하는 NEW 키워드 5

수많은 기록이 축적된 데이터를 통해 인간의 마음과 사회를 읽는 사람, 스스로를 마인드 마이너라 칭하는 송길영 작가의 네 번째 책 <시대예보: 핵개인의 시대>는 다가올 미래에 대한 변화와 그에 따른 인사이트를 전한다. 매일매일 날씨를 알려주는 일기예보가 있는 것처럼, 급변하는 사회에 맞춰 내 삶을 대비하기 위한 더 큰 호흡의 예보가 필요하다는 것. 송길영이 말하는 새 시대의 키워드 다섯.

프로필 by COSMOPOLITAN 2024.01.09
 

KEYWORD.1 #시대예보

• 2019년 ‘김지수의 인터스텔라’를 연재하는 김지수 기자가 찾아왔어요. “내년엔 어떤 것들이 의미가 있을까요?”라고 물어보셨는데 그때 제가 이렇게 대답했죠. 바뀌는 건 없을 거라고요. 매년 1월 1일이 되면 우리는 금주와 금연을 말하지만, 다시 마시고 피우게 될 거라고. 다만, 연말 연초에 스스로 마음을 다잡기 위해 지금을 돌아보는 건 의미가 있을 것 같다고 말씀드렸어요. 그렇게 기자님과 2019년부터 4년 동안 그해 어떤 이슈들이 있었는지 짚어보는 기사를 발표했어요. 그러고 나니 이런 생각이 들었죠. 단발성 인터뷰로 끝내는 게 아니라, 보다 길고 깊게 들여다보고 정리해 책으로 엮어보면 어떨까. 그게 이 책의 시작이었어요. 5년이 걸린 셈이네요.
 
• 어떤 사회적 현상이 있다고 가정했을 때, 그에 대한 생각은 모두가 자유롭게 하죠. 다만, 그 생각에 객관성을 부여하려면 일정한 데이터가 필요하고, 전문적 지식도 필요할 거예요. 그 분야에서 오랜 시간 지식과 경력을 쌓아온 분들에게서 얻은 지혜도 있어야 할 테고요. 전 그분들을 ‘도반’이라 칭해요. 오랜 시간 도반들과 새로운 정보의 출발점을 파악하고 토론하는 과정을 거쳤고, 거기서 나온 이야기를 정례화한 것이 책에 담겼죠. 각자가 살아온 연한이 있고, 경험치가 다르기 때문에 그들과의 대화를 통해 얻는 인사이트와 시너지는 상상을 초월해요. 그만큼 지식이 보다 풍요로워지는 데 중요한 원천이 되는 거죠.
 
• 지금 이 시점에서 다가올 미래를 예측하고 준비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삶이 가변적이기 때문이에요. 과거 사람들은 자신의 기술을 누구에게도 알려주지 않고 독점하려 했어요. 자신의 비법을 전수하지 않는 ‘청기와쟁이’처럼요. 하지만 지금은 수많은 분야의 노하우가 공유되고 있죠. 기술을 개인이 독점하기 어려운 시대가 된 거예요. 그리고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사라지는 직업도 생겼어요. 예전에 주요한 자격증 중에 타자 1급이 있었어요. 타이핑을 빨리 해야만 취직할 수 있는 시대가 있었거든요. 그런데 요즘은 그런 자격증은커녕 음성 파일을 텍스트로 변환해주는 서비스까지 생겼어요. 새로운 기술이 생겨나면서 일거리는 줄고 있다는 불안감, 내일 일을 알 수 없는 막연함이 생기기 마련이죠. 전 이 책을 통해 시대를 예보하고자 하지만, ‘앞으로 비가 올 테니 무얼 하세요’가 포인트는 아니에요. ‘비가 올 테니 지금 우리는 이걸 보고, 준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는 메시지를 전하는 거죠. 지금을 이해하고 있다는 건 채비의 깊이가 달라질 수 있는 힘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KEYWORD.2 #핵개인

• 다채로운 정보의 소스를 얻을 수 있게 되면서 우리가 생각하는 의지의 대상이 달라지고 있어요. 다시 말해 기존에 권위라고 생각한 것들은 예전의 무게를 갖기 힘들어졌죠. 이런 삶의 방식이 유지되고 구체화된다면, 결국 각자 삶의 의사 결정은 본인이 하게 될 것이라 생각했어요. 과거의 자녀들은 내가 어떤 대학교를 갈지, 어떤 전공을 해야 할지 그 모든 걸 부모님에게 의지했고 심지어는 나의 의지와 상관없는 진로를 택하기도 했어요. 하지만 지금은 내가 하고 싶은 걸 내가 선택하는 시대가 됐죠. 그러니까 핵개인들은 사고의 중심에 내가 있어요. 그것이 제가 정의하는 핵개인입니다. 삶의 기준을 세우는 건 나고, 그 기준에 맞는 선택도 내가 하는 것. 쉽게 예를 들어볼게요. 혼자 살고 있지만, 부모님께 용돈을 받거나 반찬을 본가에서 가져다 먹는다면 그건 핵개인이 아니에요. 반대로 5인 가구일지라도 본인의 삶을 스스로 결정하고 있다면 그건 핵개인이에요. 중요한 건 내 삶의 의사 결정을 내가 하고 있냐는 거예요.
 
• 이 시대를 살아가는 핵개인에게 가장 필요한 건 언어 능력, 그리고 문해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언어 능력은 표현이고 문해력은 이해잖아요. 이 두 개가 연결되면 커뮤니케이션이 되는 거죠. 소통함에 있어서 모두가 수평적인 관계에 있다고 생각하는 것 역시 중요해요. 생각을 바꾸면 소통 또한 섬세해지기 마련이거든요. 상사와 부하가 아니라 동료, 양성평등이 아니라 성평등이라 말해야 하는 것처럼요. 결국 이건 사고 체계 자체를 논하는 것이지 단순히 표현 하나를 가지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에요. 그런데 왜 우린 지금까지 사고 체계의 변화를 이루지 못한 걸까요? 자신이 생각을 바꾸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내가 이 자리에 어떻게 왔는데, 후배들이 내가 했던 걸 하지 않네?’라는 생각, 과거의 내가 고생한 만큼 권력을 마음대로 휘두르고 싶은 생각은 더는 핵개인의 시대에 맞지 않다고 짚어드리고 싶어요.
 
• 하지만 시대와 세대는 구분할 필요가 있어요. 특정 시대에 겪었던 사회적인 환경이 있고, 그 환경에서 자라나며 특정한 가치 체계가 형성된다는 이론을 바탕으로 X세대, 베이비 부머 세대와 같은 말이 생겼죠. 그 이론에 대해선 저도 동의합니다. 그러나 지금 미디어에서 소비되고 있는 MZ세대는 그것이 과연 적절한 표현인지 재고해볼 필요가 있다고 봐요. MZ세대라는 단어에서 이 세대에 공감하고 이들을 이해하려는 움직임보다는 ‘옛날과 다르게 요즘 세대가 문제야’라는 태도가 읽히거든요. ‘나와는 달라, 그래서 틀려’로 읽힐 수 있는 타자화의 언어는 소통에 제동을 걸고 스스로를 고립시킬 수 있는 위험성이 있어요. 그 때문에 다른 사람이 사용한다고 해서 무분별하게 따라 사용해서는 안 되고, 어떤 개념에 대해 정의할 때도 스스로 고민해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KEYWORD.3 #K의 재정의

• 전 세계적으로 수많은 K 콘텐츠가 사랑받게 된 건 그만큼 우리 것의 위상이 높아졌다는 뜻이죠. 하지만 우리 스스로 ‘K’의 정의를 국가와 민족에 가두려고 하면 저항이 생길 수 있다는 화두를 던지고 싶었습니다. K의 오리지널리티는 ‘From Korea’가 아닌 ‘Made by Korean’이 될 것이라고요. 책에서도 언급했던 정이삭 감독의 영화 <미나리>, 이민진 작가의 소설 <파친코>, 미셸 자우너의 에세이 <H마트에서 울다>가 좋은 예가 될 수 있어요. 이 작품들은 국경을 넘어 어느 땅에서든 뿌리내리고 살아가는 정착과 유랑의 이야기가 스며들어 있죠. 이걸 보면 K는 꼭 ‘국가’라는 단어로 정의할 수 있는 개념은 아닌 것처럼 보입니다. 적어도 문화이자, 사람이죠. 이제 K는 단순히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 한반도라는 장소의 가치에서 한국의 정서와 삶의 방식으로 확장되고 있는 것이죠. 또 한 가지는 지금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우리 것이 어떤 것이냐 하는 문제예요. 지금 ‘K’ 범주 안에 해당하는 건 불고기나 신선로와 같은 전통적인 것이 아닌, 불닭과 떡볶이같이 동시대적인 것들이죠. 이처럼 지금 이 순간에도 확장되고 새롭게 정의되는 K를 발전시켜나가기 위해서는 문화재를 박제하듯 보존만 하는 것이 아니라, 개방성을 갖추고 수용하는 태도가 필요할 것입니다. 그런 태도가 결국 K의 영역을 더 확장하게 만드는 힘이 될 테니까요.
 
• 세계 속 K가 새롭게 정의되었다면, 핵개인의 입장에서의 K도 되돌아봐야 합니다. 국가는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부여받은 거라면, 스스로의 의지로 선택할 수 있는 건 내가 살아갈 도시입니다. 과거와 달리 핵개인의 삶의 단위는 국가가 아닌 도시로 변화했어요. 서울을 비롯해 도쿄, 뉴욕 등 세계 여러 도시를 오가며 자기 삶의 범주를 확장하는 디지털 노마드가 생겨난 것처럼요. 서울 역시 이제 세계 어느 대도시와 견주어도 부족하지 않을 만큼 풍부한 인프라와 확고한 정체성을 갖춘 도시가 됐죠. ‘로컬’을 콘셉트로 한 공간이 사랑받는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다른 곳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유일한 ‘고유성’을 지녔기 때문이죠. 지역의 고유성에 ‘나’의 정서적 지혜가 결합된다면 그 고유함은 빛을 발합니다. 가끔 이런 고유성을 놓치고 있는 지역 내 책방을 보면 아쉽습니다. 각 지역에 여행을 가면 지역색을 띠고 있는 듯한 책방을 볼 수 있을 텐데요, 막상 책방에 들어가보면 인터페이스도, 책의 큐레이션도 도시와 크게 다르지 않은 곳들이 많죠. 책의 큐레이션부터 책방에 놓인 오브제, 하다못해 책방을 찾는 분들에게 로컬에서 생산한 차를 내어준다면 더 의미 있는 공간이 되겠죠.
 

KEYWORD.4 #직장인이 아니라 직업인

• 기술의 발전, 그러니까 AI의 등장은 일의 효율을 가져왔지만, 효율을 누린 사람들은 자신의 직업을 잃었어요. 그건 곧 한 직업으로 일을 할 수 있는 듀레이션이 짧아지고 있다는 걸 의미합니다. 머지않아 개인이 여러 직업을 가지며 살아갈 날이 올지도 모릅니다. 물론 지금 몇 개의 직업을 가지며 살아가는 사람도 있고요. 평생직장이라는 건 있을 수 없는 말이 돼버렸고, 직업이 내 생애보다 짧아진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죠. 핵개인에게 회사는 목적지가 아닌 경유지예요. 지금 최선을 다해 일을 하지만, 목적에 따라 얼마든지 회사를 옮겨 새로운 일을 할 수 있죠. 그렇다면 결국 일을 잃지 않고 살아가기 위해선 새로운 것을 배우고 수용하려는 열린 마음과 자립을 위한 주체성을 갖추어야 합니다. 그랬을 때 나만의 경쟁력, 즉 포트폴리오를 가지고 있는 것이 중요합니다. 단, 회사가 아닌 당신의 이름, 당신의 기여가 담겨 있는 포트폴리오 말이죠. 당신만의 주체성과 역량을 나타내는 증거를 계속해서 남겨야 할 것입니다.
 
• 이때, 냉정하게 생각해봐야 할 것이 있어요. 사람은 월급을 줘야 하고, 휴식과 복지도 보장돼야 하죠. 하지만 AI에겐 돈도, 별도의 휴식 시간을 주지 않아도 돼요. 새로운 일을 시작하려고 할 때 과연 내가 하려는 일이 AI로 대체될 수 있을지를 생각해봐야 합니다. 대체될 수 있다면 과감히 하지 않는 용기도 필요하죠. 누군가 그런 불안감을 가질지도 모르겠어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는 날이 올 거라는. 하지만, AI가 아껴준 그 시간 동안 사람에겐 새로운 부가가치를 이끌어낼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KEYWORD.5 #이전에 없던 가족의 탄생

• 책을 통해 ‘핵개인의 시대, 가(家)는 있지만, 족(族)이 사라지고 있다’고 말한 것처럼 사회는 새로운 형태의 가족을 제시합니다. 사촌이 더 이상 가까운 친척이 아닌 지는 오래되었습니다. 그 자리는 친형제나 사촌이 아니더라도 함께 살아가는 마음 맞는 이들, ‘협력 가족’이라는 새로운 구성원이 채우죠. 혈연과 법률에 의한 결속이 아니라, 본인의 자유의지로 맺어진 자발적 결속이라는 점에서 핵개인의 특성이 투영되어 있다고도 볼 수 있어요. 시간이 갈수록 더 많은 형태의 협력 가족이 탐색될 거예요. 지금까지 금기로 여겨졌던 것은 깨어질 것이고, ‘정상 가족’이라는 판타지 역시 사라지게 될 거예요. 더 많은 다양성이 이 사회 안에서 시도되겠죠. <코스모폴리탄> 독자들에게 적합한 주제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 이슬아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가 바탕인 소설 <가녀장의 시대>는 희생한 부모에게 효도로 되갚는 종속적 관계가 아닌 서로 존중하고 대등하게 인정하는 새로운 관계를 제시합니다. 소설 안에서 ‘이슬아’는 자신의 부모를 ‘모부’라 부르고, 딸이 가장이자 출판사의 사장이 되어 어머니와 아버지를 직원으로 고용해 함께 생활하는 모습을 보여주죠. 이 관계 속에서 우리는 그간 우리가 효도라 생각했던 것에 새로운 물음을 던집니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출판사의 직원이 됨으로써 자녀의 짐이 되지 않으면서 대등한 계약 대상자로 재탄생하기 때문이죠. 실제로 이 책을 본 어르신들은 이런 말을 하셨다고 합니다. “이슬아 같은 딸이 있었으면 좋겠네!” 중요한 건 단순히 이 소설이 가족과 효도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줬다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모습이 틀렸다고 매도당하지 않고 수용되며 공감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입니다. 이는 많은 걸 내포하고 있어요. 앞으로 이 사회가 어떻게 변화할지 그 가능성도 마찬가지고요.
 
• “이기려는 경쟁에서 내려오고 보여지는 것의 구속을 벗어던질 때 스스로를 인정할 수 있도록 자신을 돌아볼 수 있습니다. 스스로가 스스로의 권위를 자신 있게 인정하는 사회로의 변화를 꿈꿔봅니다.” 이게 이 책을 통해 제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였어요.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타인을 타자화하는 순간 스스로에게 열패감을 약속하게 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각자의 속도와 방향에 맞춰간다면 타인의 위치가 신경 쓰이지 않고, 내면에 자존감이 더 단단히 뿌리내리게 될 것이라 믿어요. 국가나 공동체의 이름에 속하기보다는 그 자체로 ‘세계 속의 나’라는 의미를 지닌 <코스모폴리탄> 독자분들은 이미 인생 한가운데에 ‘나’를 두고 계신 분들일 것이라고, 이미 핵개인의 삶을 영위하고 있다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Credit

  • editor 천일홍
  • photo by 변순철/MIDJOURNEY
  • art designer 진남혁
  • digital designer 김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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