놓치면 후회할, 론 뮤익 전시 찐 리뷰
현대 조각의 거장 론 뮤익 전시에서 우리는 '진짜'를 만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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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스> ⓒ Ron Mueck ⓒ MMCA ⓒ Fondation Cartier / Photographer ⓒ Kiyong Nam
친숙하게, 그러나 낯설게 스며드는
관람객들 손에 들린 스마트폰이 잠시도 쉴 틈 없이 작동한다. 사람들은 카메라 프레임에 작품이 가장 보기 좋게 담길 각도를 찾아 바삐 손가락을 움직인다. 하루 평균 5000명 이상이 방문하는, 지금 서울에서 가장 ‘핫’한 전시장 풍경답다. 지난 4월 11일 개막한 론 뮤익의 전시는 국립현대미술관과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이 공동 주최했으며, 아시아 최대 규모의 회고전이라는 점에서 더욱 주목받고 있다. 개막 한 달도 채 되지 않은 5월 1일 기준, 누적 관람객 수가 이미 10만 명을 넘어섰다. 이처럼 폭발적인 반응을 얻는 데에는 현대 조각의 거장이라는 론 뮤익의 명성을 뛰어넘는 무언가가 작용한다.

론 뮤익 전시장 내부 전경. ⓒ Ron Mueck ⓒ MMCA ⓒ Fondation Cartier / Photographer ⓒ Kiyong Nam
조각은 평면 예술처럼 한 방향에서만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작품을 중심으로 다각도에서 바라볼 수 있다. 특히 인체 형상을 주로 다루는 론 뮤익의 작품은 예술적 배경지식이 없는 사람에게도 어렵지 않게 다가간다. 인간의 솜털, 모공, 손톱, 수염 자국 등 인체의 극히 소소한 부분까지도 기이할 정도로 실재에 가깝게 구현돼 있다. 작가의 의도에 따라 크기만 확대되거나 축소됐을 뿐,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하는 대상과 동일하다. 론 뮤익은 작품을 늘 실제 모델보다 몇 배로 크거나 작게 제작하는데, 여기에도 관객을 향한 작가의 의도가 고스란히 배어 있다. “현실과 동떨어진 곳에 있다는 체험을 주기 위함이다. 실제와 혼돈하지 않기 위해, 관객들이 작품에 자연스럽게 몰입하도록 만들려는 목적을 담았다”라고 작가는 설명한다. 그래서 예술과 친하지 않고, 미술관이 낯선 이들에게도 론 뮤익의 작품은 친숙하게 느껴진다. 옆으로 누워 잠든 남자의 찌그러진 얼굴(‘마스크 II’), 허리를 휘청일 만큼 많은 나뭇가지를 안고 있는 여성(‘나뭇가지를 든 여인’), 침대에 반쯤 누운 채 미간을 찌푸리며 턱을 괴고 있는 여성(‘침대에서’), 갓난아이를 품에 안은 채 양팔 가득 장바구니를 들고 가는 여인(‘쇼핑하는 여인’)의 표정에 관람객은 자연스럽게 감정이 이입된다. 작품 속 인물이 처한 상황과 감정에 공감하면서, 단편적 감상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관람객의 일상과 경험, 주변의 인물로 확장하며 자신의 삶과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나뭇가지를 든 여인’ ⓒ Ron Mueck ⓒ MMCA ⓒ Fondation Cartier / Photographer ⓒ Kiyong Nam
이번 전시는 작가에 대한 호기심도 충족해준다. 프랑스 시각예술가 고티에 드블롱드가 촬영한 론 뮤익의 창작 과정을 담은 사진과 다큐멘터리도 감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론 뮤익의 작품은 수개월, 길게는 수년에 걸쳐 완성되는데, 1986년부터 작품 활동을 시작한 60대 예술가인 그의 작품이 48점에 불과한 이유다. 작가의 지난하고 노동집약적인 창작 과정을 보고 있으면 빠르고 즉각적인 결과만을 추구하는 우리의 삶을 돌아보게 된다. 론 뮤익의 작품은 결코 아름답지만은 않다. ‘실재’인지 ‘작품’인지 헷갈릴 정도로 완성도 높은 작품 속 인물들의 표정은 차갑고 무심하며, 외롭다. 그러나 이 감정의 결 속에서 우리는 무엇이 원본이고 복제품인지 경계가 모호한 AI 시대를 살아가는 스스로에게 자꾸만 되묻게 된다. “무엇이 진짜인가?”

‘스틸 라이프 : 작업하는 론 뮤익’ ⓒ Gautier Deblonde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의 40주년, 그리고 론 뮤익과의 특별한 관계
이 특별한 전시는 2005년부터 론 뮤익을 후원한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과 론 뮤익의 끈끈한 협력으로 개최됐다.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은 2005년 당시 유럽에서 처음으로 론 뮤익과 관계를 맺은 기관이기도 하다.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의 큐레이터 키아라 아그라디는 “이번 전시는 준비 과정에서 작품 설치 방식은 물론 아주 세심한 부분까지 작가와 함께 논의했기 때문에 그의 참여를 관람객 여러분도 생생히 느낄 수 있길 바란다”고 말하며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과 론 뮤익의 각별하고도 상징적인 관계를 강조한 바 있다. 실제로 100개의 해골로 만들어진 ‘매스’는 매번 설치 방식과 전시의 전경이 달라지는 유일한 작품이기도 한데, 높은 층고와 작은 창을 가진 국립현대미술관 5번 전시실 공간의 특성에 맞춰 작가는 100개의 해골을 쌓는 형태로 작품을 설치했다. 이를 두고 작가는 넓은 전시장에 나 있는 작은 창틀을 통해 비로소 우리가 땅 밑에 존재한다는 것을 인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착안했다고 설명했다.

2025년 개관을 앞둔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의 새 미술관. 인테리어 및 건축 장 누벨(Jean Nouvel), © Luc Boegly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은 1984년 창립한 사립 문화 기관으로, 현대미술의 여러 분야를 세계적으로 알리고 지원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창립 이래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들을 후원해왔으며 젊은 세대 예술가에게 최초의 전시를 열어주고, 작가들에게 직접 작품을 의뢰해 다채롭고 풍부한 컬렉션을 선보여왔다. 세계적인 비디오 아티스트로 평가받는 피에릭 소린, 사진작가 아라키 노부요시, 모리야마 다이도, 가와우치 린코, 그리고 론 뮤익에 이르기까지, 모두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이 명민하게 주목하고 세계에 널리 알린 작가들이다. 한국과의 인연은 지난 2007년 한국의 대표적인 현대미술가 이불을 초청해 파리에서 12개의 크리스털 및 알루미늄 조각으로 이루어진 대형 설치 작품을 선보인 것으로 시작됐다. 이후 2017년 서울시립미술관과 공동 개최한 하이라이트 전시에서는 재단 소장품 중 국제적인 작가 25명의 작품 100여 점을 공개하기도 했다.

‘장 누벨의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 전시 전경 © Jean Nouvel / ADAGP, Paris, 2025. © Andrea Rosetti

세계적인 건축가 장 누벨이 설계한 미술관 내부 모습. © Jean Nouvel / ADAGP, 파리, 2024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의 올해는 더욱 특별하다. 이번 론 뮤익 전시를 국립현대미술관과 협업한 데 이어, 연말에는 재단 설립 40주년을 기념해 파리 팔레 루아얄에 새로운 미술관을 개관할 예정이다. 세계적인 건축가 장 누벨의 설계로 완성될 이 공간은 파리의 기존 건축물이 지닌 역사성과 조화를 이루면서도, 외관 전체를 커다란 내닫이창으로 구성해 건물 내부의 방문객은 물론, 지나가는 사람들도 도시를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설계했다. 또한 6500㎡에 이르는 내부 전시 공간에 1200㎡ 면적의 이동식 플랫폼 5개를 설치해 전시 방식에 다양한 변화를 줄 수 있게끔 했다. 덕분에 관람객들은 여러 플랫폼이 매번 새롭게 변주하며 공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예술적 경험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이렇듯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의 새 공간은 1994년 라스파이 대로에서 전시 공간을 열었던 것에 이어 전 세계 현대미술의 주요한 전시의 장이자,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의 상징적인 랜드마크가 될 준비를 마쳤다. 이 혁신적인 공간의 구성과 이에 담은 재단의 비전은 5월 10일부터 9월 14일까지 조르지오 치니 재단에서 개최되는 제19회 베니스 국제 건축전의 병행 ‘장 누벨의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이라는 전시명으로 공개된다. 이 전시는 1984년 재단 설립 이래 건축을 핵심 축으로 삼아온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의 철학과 정체성을 다시금 확인하는 자리가 될 것이다.

‘장 누벨의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 전시 전경 © Jean Nouvel / ADAGP, Paris, 2025. © Andrea Rosetti
한편 재단의 설립 회장인 알랭 도미니크 페랭은 활동 원칙으로 3가지를 강조한 바 있다. 첫째, 이미 알려진 작가와 신진 작가를 아우르는 예술적 관계 형성, 둘째, 회화부터 사진, 건축, 영화, 디자인, 패션 등 다양한 형태의 창작을 위한 공간으로 활약, 마지막으로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의 활동과 메종 까르띠에의 상업적 행보를 엄격하게 구분하는 것. 이 3가지 원칙은 재단이 설립된 40년 전부터 지금까지 일관되게 유지되고 있다. 시간이 흘러도 예술을 대하는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의 원칙과 사명감은 변하지 않는다는 걸 방증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단언컨대,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과 전 세계 다양한 아티스트와의 유서 깊은 협업은 예술의 감동을 가장 ‘진짜’ 같은 순간으로 사람들을 이끄는 가장 세련된 방식임에 틀림없다. 다가올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 40주년의 행보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Writer_전소영(프리랜스 에디터)
Credit
- Editor 천일홍
- Writer 전소영
- Photo By Cartier
- Cooperation Cartier
- Art Designer 변은지
- Digital Designer 김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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