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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스마라와 함께한 <코스모폴리탄> 9월호 커버의 주인공, CL

세상 앞에서 태어나 세상 앞에서 자랐다. 아시안, 여성, 아웃사이더… 어떤 경계에도 포획되지 않고 자유롭게 흐르는 단독자, CL의 초상.

프로필 by 전소희 2024.09.02
오늘 감탄했어요. 당신에게선 무대 위에서든 카메라 앞에서든 품위가 느껴져요. 이 힘은 어디서 비롯되는 건가요?
무거운 단어네요.(웃음) 저는 어떤 환경 속에서도 항상 저 자신을 돌아보며 충전하려 해요. 제가 통제할 수 없는 순간도 경험으로 삼고, 계속해서 도전하죠. 거기서 나오는 에너지라고 생각해요.
<코스모폴리탄> 24주년 창간기념호입니다. <코스모폴리탄> 미국판의 전설적 편집장 헬렌 걸리 브라운이 그런 말을 했어요. “착한 여자는 천국에 가지만 나쁜 여자는 어디로든 간다.” 수많은 ‘나쁜 기지배’를 거느린 씨엘에게 나쁜 여자란?
솔직하고, 자신이 누구인지 알고,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가 있는, 자기만의 ‘규율’을 가진 여자들. 저는 용기 있는 여자들을 좋아해요.
많은 이들의 멋진 ‘언니’죠. 씨엘의 노래에도 자주 등장하는 단어인데, 당신이 생각하는 ‘언니’는 어떤 존재인가요?
저는 실제로도 여동생이 있어 언니라는 단어가 익숙해요.(웃음) 제가 노래하는 ‘시스터후드’ 속 언니는 누구보다 다정하고, 파워풀한 존재죠.
울 맥시 드레스 2백만원대 Max Mara.

울 맥시 드레스 2백만원대 Max Mara.

어린 시절, MTV로 팝스타들의 무대를 보며 꿈을 키웠다고 알고 있어요. 그 시절 당신이 힘을 얻는 언니들은 누구였어요?
여성 래퍼들과 뮤지션들. 미시 엘리엇, 로린 힐, 릴 킴, 에리카 바두… 개성이 강한 ‘언니’들을 좋아했어요. 자기가 누구인지 옷과 춤과 음악으로 보여주는 아티스트들. 가수를 꿈꾸지 않던 시절에도 푹 빠졌죠.
어릴 때 일본과 프랑스에서 자란 TCK이죠.
그랬죠. 어린 시절 씨엘은 굉장히 수줍지만 동시에 매우 씩씩한 친구였어요.(웃음) 그때그때 다양한 친구들을 만나며 외로움보단 새로움을 즐기는 애였어요. 언어와 문화가 다른 환경 속에서 저 자신을 위해 꾸준하게 하고 싶은 걸 찾은 게 춤이었어요. 언어는 바뀌어도 몸으로 하는 춤은 바뀌지 않잖아요. 거기서 안정감을 느꼈어요.
다양한 문화권의 경험과 4개 국어 구사가 아티스트인 당신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나요?
열려 있는 마음을 가지게 된 것. 다양한 인종과 문화를 접하다 보니 모두가 다르다는 걸 일찍부터 알게 됐어요. 제 직업은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함께 뭔가를 만들어나가는 일이 자주 있잖아요. 굉장히 좋은 연습이 됐다고 봅니다.
데뷔 15주년이에요. 씨엘의 첫 등장을 떠올려보면 정말 대단해요. 자신만의 개성과 목소리를 가진, 기존의 아이돌들과는 완전히 다른 뉴타입의 아티스트였죠.
사실 저는 그 당시 뭔가 새로운 걸 보여주겠다는 마음이 없었어요. 한국 가요계에 대해 잘 몰랐고, YG만 알았으니까요. 프로필 촬영할 때도 주변에 있는 친구들이 디자인한 옷을 입고, 제게는 익숙했고 항상 해오던 것을 한 건데 그렇게 받아들여주시니 오히려 신기했죠. 닭머리나 모히칸 같은 헤어스타일조차 그게 실험적인 건지 모르고 했습니다.(웃음)
팀 활동 때 ‘Ugly’ 같은 부정적인 감정부터 ‘내가 제일 잘 나가’ 같은 프라이드까지, ‘나 자신’에 대한 다양한 감정을 노래했죠. 당신은 스스로를 미워하는 비련의 아티스트 같기도 했다가, 한없이 자부심이 넘치는 디바 같기도 했어요.
저는 스스로에 대한 감정에 항상 솔직했어요. 저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 긍정적인 감정 모든 걸 온전히 느낀다는 건 제게 큰 선물이에요. 저는 뭔가를 받아들이고 느끼고 소화하는 데 시간이 걸리는 편인데, 오랜 시간을 들여 스스로를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관찰하면 나 자신에게 가졌던 감정들이 정화되더라고요.
울 맥시 드레스 2백만원대 , 레더 글러브 50만원대, 레더 벨트 40만원대 모두 Max Mara.

울 맥시 드레스 2백만원대 , 레더 글러브 50만원대, 레더 벨트 40만원대 모두 Max Mara.

이채린은 스스로를 사랑하나요?
저는 저 자신에게 관심이 많아요. 그렇게 표현하고 싶네요.
사람들이 씨엘에게 하는 가장 큰 오해가 있다면?
교포이거나 혼혈일 것이다.(웃음) 사실 저는 그런 거에 큰 관심 없어요. 그들이 오해하는 것들도 모두 저일 거예요. 차가울 때도 있고, 따듯할 때도 있고, 모든 건 상대적이고 상황에 따라 다른 것이니까. 남들의 판단과 감정은 어떻게 할 수 없는 거니, 그들이 그렇게 느꼈다면 그런 거죠.
그렇다면 ‘씨엘’다운 건 뭔가요?
제가 누군지 정의 내리지 않으려 해요. 그렇게 하면 괴로워지거든요.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났을 때 또 다른 저를 발견할 수 있는데, ‘사실 난 이런 사람인데’라고 생각한다면 그 환경에서 왜 저 자신이 아닌지 괴롭겠죠. 아마도 전 누군가에겐 좋은 언니일 거고, 다른 누군가에겐 좋은 친구일 거고, 또 다른 누군가에겐 적일 수도 있겠죠. 모두가 그렇듯이. ‘나’는 계속 업데이트되는 거예요.
K팝 기획사 특유의 연습생 시스템 속에 있었다 보니 일상을 영위하는 사소한 것들에 서툴렀다고요. 베리체리를 만들어 독립한 후, 일상을 처음부터 배워나가는 시기를 가졌다고 알고 있어요.
당시엔 심지어 혼자 편의점에 가서 뭘 사본 적도 없었죠. 계속 이렇게 살다 보면 용기를 잃을 것 같았어요. 정말 사소한 거라도, 이를테면 혼자 숨지 않고 산책을 하거나 혼자 비행기를 타봐야겠다 마음먹었죠. 어릴 때는 당연하게 하던 것들이 두려워지니 이건 멋진 어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저는 그래도 너무 어리지 않은 나이에 연습생이 됐는데, 아주 어릴 때 연습생 생활을 시작하면 놓치고 가는 게 많은 것 같아요. 졸업하기까지 아주 오래 걸리는 학교 같달까.(웃음)
캐시미어 터틀넥 1백만원대, 카멜 스커트 2백만원대, 레더 글러브 50만원대 모두 Max M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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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생활인으로서 이채린은 어른이 됐군요.
맞아요. 채린이는 씨엘에게 영혼 같은 거예요. 그렇게 영혼을 가끔은 채워줘야 씨엘도 계속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채린이에게 관심을 줬습니다.
첫 정규 앨범 <ALPHA> 소개글에 “걸어보기도 전에 달리기 시작해 걷는 법도 쉬어 가는 방법도 모른 채 13년 동안 많은 걸 이루고, 또 많은 걸 잃기도 했다”라고도 썼죠. 돌이켜보면 어떤 걸 잃었고, 어떤 걸 이뤘나요?
제가 이룬 건 여러분 모두가 다 같이 봤어요. 또한 제가 잃은 것들도 모두가 보고 느끼시지 않았을까 싶네요. 저는 세상 앞에서 컸잖아요.
갑자기 씨엘을 처음 본 순간이 생각나요. 2007년 <SBS 가요대전>에서 YG패밀리 무대에 홍일점으로 등장해 폭풍 같은 영어 랩을 하며 엔딩을 장식했던.
투애니원으로 데뷔하기도 전 제 인생의 첫 무대였는데, 정말 재미있었죠. 저도 그때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나요. 무대에 올랐던 감각, 그때 느낀 감정.
캐시미어 봄버 재킷 9백만원대, 캐시미어 터틀넥 1백만원대, 니트 스커트 1백만원대, 니트 벨트 50만원대, 레더 벨트 40만원대, 니트 타이츠 가격미정, 레이스업 앵클부츠 1백만원대 모두 Max M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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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 전엔 몰랐고 지금은 아는 것 중엔 어떤 게 있나요?
흠, 아직 잘 모르겠어요. 그간의 경험에서 배운 건 되게 많은데, 여전히 모든 게 궁금해요. 아직도 정답을 모르겠고요. 계속 이 일을 하고 싶기에 그런가 봐요.
데뷔 무렵 씨엘에게 한마디 한다면 어떤 말을 해주고 싶어요?
그 시절의 저 자신을 방해하지 않겠습니다. 아무 말도 안 할 거예요!
씨엘에게 음악이란?
테라피. 마음에 와닿는 가사를 들으면 그 노래 속 화자와 이야기하는 기분이 들어요. 다른 누군가와 이야기하는 것보다 더 치유가 되죠. 가사 없는 음악을 들을 때 느껴지는 한없는 위로도 있고요.
그렇다면 무대란?
명상하는 곳. 가장 외롭기도 하고, 가장 저 자신이기도 한 순간. 그때 저는 저와 혼자 있는 기분이 들어요. 제가 가장 평화롭고 평안한 순간이죠.
데님 재킷 가격미정, 캐시미어 터틀넥 1백만원대, 스커트로 연출한 니트 벨트 50만원대, 스웨이드 부츠 가격미정, 니트 타이츠 가격미정 모두 Max M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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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답변이네요. <ALPHA>에 수록된 트랙의 뮤직비디오를 감상했을 때 패션, 연출, 미장센 등 시각적인 쾌감이 굉장했어요.
전 그게 너무 재미있어서 이 일을 계속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음악에서 시작할 수도 있고, 어떤 의상에서 시작할 수도 있고, 영감을 주는 물건에서 시작할 수도 있죠. 그렇게 아이디어를 내서 세상 밖으로 탄생시키는 것. 그만한 재미가 없는 것 같아요. 많은 걸 경험하고 느끼고 표현해서 내놓는 재미. 그게 제일 재밌어요.
창작 외에 즐거움을 느끼는 것은?
수영하는 거 좋아해요. 흠, 말하고 보니 혼자 있는 걸 좋아하는 것 같네.
자신이 아웃사이더 같다는 기분을 느껴본 적 있나요?
저는 항상 그런 기분을 느껴요.
재킷 가격미정, 울 카디건 2백만원대 모두 Max Mara. 스타킹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재킷 가격미정, 울 카디건 2백만원대 모두 Max Mara. 스타킹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누구나 파티에 초대받지 못한 듯한 기분을 종종 느끼죠.
하하. 파티는 안 초대해주셔도 됩니다. 저는 파티에 가도 숨는 스타일이라.(웃음) 모든 사람은 백퍼센트 다 다르기에, 각자가 내가 다른 이들과 다르다는 기분을 느끼겠죠. 저는 늘 그런 결핍의 감각에서 호기심이 생겼고, 새로운 게 알고 싶어지곤 했어요. 거기에서 제 음악도 출발했고요.
지금의 씨엘이 영감을 얻거나 힘을 얻는 사람은 누군가요?
투애니원 그리고 투애니원 콘서트를 함께 만들어나가고 있는 분들. 다시는 이렇게 모일 수 없을 것 같았던 멤버들과 만나 공연을 만들어나가는 과정이 정말 소중해요. 굉장히 쉽지 않은 일이었거든요.
당신의 오랜 팀, 투애니원은 당신에게 어떤 존재인가요?
뻔한 말인데요, 정말정말 가족이 됐어요. 사실 처음에 저희 넷이 모인 게 저희의 의지나 선택은 아니었잖아요? 가족도 마찬가지죠. 물론 최근엔 다양한 형태의 가정이 있지만, 앞선 개념으로 가족을 생각하면 부모와 자식과 남매는 선택하기 전에 먼저 주어져요. 우리도 그렇게 서로에게 주어져서 탄생했는데, 정말 많은 걸 같이 겪고 성장해나가며 이제는 우리 의지로 함께하는 자매들이 된 거예요.
씨엘은 무엇이 두렵나요?
제가 용기를 가지고 임하는 모든 것. 두렵기 때문에 용기를 내는 것이니까요. 두려움과 용기는 공존하는 거예요. 사람들 앞에 서는 것부터, 모든 건 두려움에서 시작되죠.
사람들 앞에 서는 게 숨 쉬듯 당연한 일일 것 같은 디바에게서 그런 말을 듣네요.
저는 사람들 앞에서 말할 때 용기를 많이 내야 되는 사람이에요. 무대는 매일 할 수 있거든요? 그런데 생각이 많아서 혹은 하고 싶은 얘기가 많아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말은 제가 원하는 만큼 전달이 안 된다고 느낄 때가 있어요. 왜, 교수님 중에서도 그런 분들 있잖아요. 논문은 잘 쓰는데 강의는 안 되시는 분들. 제가 그래요. 일기와 가사를 맨날 써도 인터뷰는 전달이 잘 안 됩니다. 그래도 오늘은 꽤 편하게 말했어요.(웃음)
겁이 많지만 동시에 용기도 많은 사람 같아요.
용기 있는 겁쟁이로군요, 저는.(웃음)
카멜 코트 7백만원대, 레더 글러브 50만원대 모두 Max Mara. 스타킹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카멜 코트 7백만원대, 레더 글러브 50만원대 모두 Max Mara. 스타킹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씨엘, 그리고 이채린은 무엇을 믿나요?
저는 제 마음의 소리를 믿습니다. 마음은 생각과 다를 때가 많아요. 제 생각은 가끔 거짓말을 곧잘 하거든요. 하지만 제 마음은 속일 수 없는 거더라고요.
지금까지 다양한 음악적 실험을 해왔어요. 앞으론 어떤 음악을 들고 나올 계획인가요?
최근엔 투애니원에 집중하지만, 전 항상 솔로 음악 작업을 하고 있어요. 제 루틴이죠. 여러 가지를 시도하고 구상 중인데, 내년쯤엔 재미있는 프로젝트로 돌아올 수 있을 것 같아요. 저도 어떤 음악이 될지 궁금하네요!

Credit

  • Fashion editor 전소희
  • Feature editor 이예지
  • Photographer 고원태
  • Hair 이혜영
  • Makeup 박태윤
  • Stylist 김영진
  • Nail 김수지
  • Set Stylist 다다오브제
  • Assistant 김지은/김효진
  • Art designer 변은지
  • Digital designer 김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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