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SHION

침대 밖은 위험해? 란제리 룩에 대한 모든 것

요즘 대세 란제리 룩 알려드림

프로필 by 이병호 2024.07.07
GIVENCHY

GIVENCHY

HISTORY
지난해 3월, 패션 위크 취재차 파리를 찾은 에디터는 한 쇼장에서 충격에 빠졌다. 그 쇼는 바로 미우치아 프라다의 미우 미우. 센슈얼한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새시한 애티튜드를 지닌 모델들이 런웨이에 ‘팬티’만 입고 줄지어 등장했기 때문. 물론 이전에도 팬티를 런웨이에 올린 디자이너들은 많았지만, 미우치아의 팬티(이 다음부턴 우아하게 ‘브리프’라 말하겠다)들은 테일러드 코트, 셋업 카디건, 니트 터틀넥과 같은 클래식한 상의와 매치돼 더욱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브리프가 팬츠와 스커트 같은 하나의 완벽한 하의가 된 기념비적인 순간! 그중 쇼의 말미를 장식한 비즈 장식의 브리프들은 마치 빅토리아 시크릿의 판타지 브라같이 파워풀한 아이콘처럼 보였을 정도다. 미우미우의 앰배서더 엠마 코린(이 쇼의 클로징을 장식하기도 한!)은 몇 달 후 베니스영화제에서 이 컬렉션의 또 다른 브리프 룩을 입고 레드 카펫에 올라 이 패션이 더 이상 런웨이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님을 천명했다.

사실 브리프를 리얼웨이에서 소화한 셀렙이 그뿐만은 아니다. 1여 년 전 켄달과 카일리 제너 자매가 각각 보테가 베네타와 로에베의 브리프를 입고 거리에 올랐으니 말이다. 이들의 행보에서도 알 수 있듯 속옷은 이제 더 이상 그저 ‘속의 옷’에 머물러 있지 않다. 그야말로 하나의 완벽한 겉옷이 됐다. 지난 2022년 6월호와 7월호에 에디터는 다시 돌아온 글램 룩과 남자들의 노출에 대한 칼럼을 쓴 바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엔 란제리 룩이 있었다. 기나긴 팬데믹의 종말에 대한 기대가 부풀어 오른 그 시기에 마치 인간의 욕망이 폭발하듯 자신의 몸을 드러내는 패션이 빅 트렌드로 떠오른 것. “스웨트 슈트와 마스크 속에 자신을 꽁꽁 숨겨온 사람들이 자유를 갈망하고 있는 거죠.” “1920년대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어요. 스페인 독감의 유행 이후 사람들은 보다 가볍고 느슨한 옷을 입었죠.” 패션 평론가들은 앞다퉈 이 현상을 분석했다. 무겁디무거운 팬데믹의 무게를 던져 버리고 싶었던 걸까? 란제리 룩이 이후 매 시즌 등장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란제리는 언제 처음 겉옷으로 이용되기 시작한 걸까? 중세시대부터 여자들은 오늘날 슬립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슈미즈를 비롯해 코르셋, 크리놀린, 페티코트 등 다양한 속옷을 입어왔다. 그리고 속옷이 겉옷으로 이용된 첫 순간은 18세기에 이뤄졌다. 1783년 엘리자베스 비제 르 브룅이 그린, 슈미즈를 입은 마리 앙투아네트의 초상화에서도 볼 수 있듯 당대 귀족 여성들은 드레스 안에 입던 슈미즈를 데이 드레스로 입었다. 물론 왕비가 속옷을 겉옷으로 입었다며 많은 비판을 받았듯, 슈미즈는 정복은 아니었다.

1925 Paul Poiret

1925 Paul Poiret

1987 F/W Vivienne Westwood

1987 F/W Vivienne Westwood

1992 S/S John Galliano

1992 S/S John Galliano

2023 F/W Miu Miu

2023 F/W Miu Miu

그리고 꽤 긴 시간이 흐른 1920년대에 들어서야 란제리는 정식으로 겉옷이 됐다. 디자이너 폴 푸아레가 코르셋에 지친 여성들을 위해 침실에서 입던 편안한 란제리를 응용한 데이 드레스를 처음 고안했다. 또한 플래퍼 룩이 유행하며 슬립 드레스 형태의 드레스들이 유행하기도. 1930년대엔 마담 비오네가 이너 드레스 모티브의 바이어스컷 드레스로 여성의 보디라인을 우아하게 드러냈다. 그리고 또다시 긴 시간이 흐른 1970년대에 비비안 웨스트우드가 코르셋을 톱으로 재해석한 룩을 통해 다시금 하이패션의 중심에 들어서게 됐다. 1980년대엔 앙팡 테리블 장 폴 고티에가 코르셋과 보디슈트를 적극 이용한 섹슈얼한 컬렉션으로 파리 패션계에 돌풍을 일으켰다. 마돈나가 1990년 ‘블로드 앰미션’ 월드 투어에서 착용한 그 유명한 ‘콘 브라’가 바로 그의 작품. 이 시기 런웨이뿐 아니라 현실에서도 여자들이 속옷을 겉옷으로 적극 입기 시작했다. 이는 여성의 사회 진출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여자들은 여러 속옷을 겉옷으로 활용하며 그동안 감춰온 자신의 몸을 당당히 드러냈다. 남성의 시선을 위해서가 아닌, 스스로를 위해 여성미를 보여주기 시작한 것. “속옷을 겉옷으로 입는 것은 현대의 도덕에 도전하는 방법이었어요”라는 말을 남긴 패션 큐레이터 에드위나 어만의 말처럼 여자들은 속옷을 통해 자신의 앞을 가로막고 있던 두터운 장벽을 부수기 시작했다.

이후 돌체앤가바나, 존 갈리아노(1992 S/S 컬렉션 전체를 란제리에서 영감받아 완성했다!), 지아니 베르사체, 티에리 뮈글러, 톰 포드 등 란제리를 디자인에 적극 이용한 디자이너가 대거 등장했고, 1990년대 중반엔 슬립 드레스의 간결한 미학에 빠진 미우치아 프라다, 캘빈 클라인과 같은 미니멀리스트들마저 이에 가세하며 란제리는 디자이너들의 주요한 영감의 원천으로 등극했고 그렇게 여자들의 옷장에 반드시 있어야 할 필수 아이템이 됐다.

Marilyn Monroe in 1953

Marilyn Monroe in 1953

Madonna in 1990

Madonna in 1990

Kate Moss & Naomi Campbell in 1994

Kate Moss & Naomi Campbell in 1994

Alexa Chung in 2023

Alexa Chung in 2023

그렇다면 패션 아이콘은? 1920년대에 파자마를 겉옷으로 즐긴 코코 샤넬과 슬립 드레스를 사랑한 전설적 배우 루이스 브룩스, 마릴린 먼로와 소피아 로렌, 브리지트 바르도를 비롯한 관능미 가득한 배우들, 앞서 언급한 마돈나, 1993년 리자 브루스의 슬립으로 아이콘으로서의 지위를 공고히 다진 케이트 모스, 다양한 란제리를 감각적으로 소화하고 있는 알렉사 청 등이 있다.

FROM THE RUNWAY
VICTORIA BECKHAM

VICTORIA BECKHAM

Dior.jpg Versace.jpg Shu Shu Tong.jpg Louis Vuitton.jpg  Isabel Marant.jpg The Attico.jpg
Dolce & Gabbana.jpg N 21.jpg Supriya Lele.jpg Coperni.jpg Valentino.jpg
이번 시즌 디자이너들은 란제리 룩을 어떻게 자신의 컬렉션에 적용했을까? 메종을 떠난 지방시의 매튜 윌리엄스는 온몸이 비치는 시폰 슬립 드레스로 자신의 커리어에서 가장 우아한 룩을 선보였고, 란제리 룩을 상징하는 두 하우스 돌체앤가바나와 베르사체는 브랜드의 최전성기를 함께한 슈퍼 모델 나오미 캠벨과 클라우디아 쉬퍼에게 하우스의 아이코닉한 슬립 드레스를 입혔다. 마담 비오네가 연상되는 우아한 바이어스컷 시스루 드레스와 슬립 드레스를 선보인 빅토리아 베컴, 모던한 셔츠 재킷과 버뮤다팬츠에 플라워 브라톱을 매치한 발렌티노의 피에르파올로 피치올리, 1990년대 감성의 슬립 드레스를 선보인 루이 비통의 니콜라 제스키에르, 떠오르는 신성 수프리아 렐레는 미니멀한 란제리 룩의 세련미를 설파했다. 슬립 드레스에 오버사이즈 아노락 트렌치코트를 툭 걸친 이자벨 마랑, 슬립이 벗겨져 속옷이 드러난 듯한 룩을 선보인 N˚21의 알레산드로 델라쿠아는 스타일링의 좋은 예를 보여줬다. 코페르니의 듀오 아르노 바양과 세바스티앵 메예르도 다양한 슬립 아이템을 동시대적으로 재해석해 여심을 사로잡았다. 최근 떠오르고 있는 중국의 신진 디자이너 마크 공과 슈슈통은 가터벨트를 비롯한 다양한 란제리를 디자인에 적극 이용하며 트렌드에 힘을 보태고 있다. 특히 톱 위에 브라를 레이어링한(미우치아도 사랑하는 드레싱!) 슈슈통의 스타일링을 눈여겨보도록.

HOW TO WEAR
Kendall Jenner

Kendall Jenner

MIU MIU 1백6만원.

MIU MIU 1백6만원.

PRADA 4백85만원.

PRADA 4백85만원.

ALEXANDER MCQUEEN 2백68만원.

ALEXANDER MCQUEEN 2백68만원.

NENSI DOJAKA 1백만원대.

NENSI DOJAKA 1백만원대.

BALENCIAGA 66만원.

BALENCIAGA 66만원.

DIESEL 56만원.

DIESEL 56만원.

사실 우리는 이 룩을 이미 그리고 멋지게 즐기고 있다. 알렉사 청을 비롯한 여러 아이콘의 룩에서도 발견할 수 있듯 브라톱이나 슬립 톱, 슬립 드레스(브리프는 좀 더 용기를 내야 하겠지만!)를 바이커 재킷이나 데님 팬츠, 티셔츠와 함께 입는 쿨한 믹스매치를 즐기고 있지 않은가! 이제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란제리 룩을 즐기는 태도다. “우리는 여성미를 지니고도 강할 수 있어요.” 미우치아 프라다의 말처럼 여성성을 온전히 드러내는 란제리 룩은 가장 강력한 패션 코드다. 남성의 시선을 위한 패션이 아닌 여성의 자주성을 위한 패션이자 옷 안에 몸을 가두는 것이 아닌 완전한 자유와 해방을 뜻한다. “란제리를 모티브로 한 제 옷에 여성의 강인함과 부드러움을 동시에 담고 싶어요. 그것이 우리를 온전한 여자로 만들기 때문이죠. 우리는 강하지만 동시에 연약함도 지니고 있어요. 이건 정말 아름다운 일이에요!”

패션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란제리 전공의 디자이너 넨지 도자카의 말에서도 알 수 있듯 란제리 룩은 여성의 상반된 두 모습을 매력적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노출은 성별과 관계없이 그저 섹시하게 보이기 위함이 아니다. “섹시하다는 걸 보여주는 게 아니라, 우리가 누구인지를 보여주는 행위예요.” 여성복뿐 아니라 남성복에 란제리 코드를 적용해 스타덤에 오른 루도빅 드 생 세르냉의 말을 통해 우리는 란제리 룩의 눈부신 가치를 알 수 있다. 그렇다. 란제리 룩은 그저 은밀한 패션이 아닌 위대한 ‘펑크’이자 세상의 편견과 선입견을 부수는(1850년대에 속바지 볼류머가 여성 복식 자유 운동의 상징이 됐던 것처럼!) ‘강력한 존재’다. 비비안 웨스트우드가 코르셋을 비롯한 란제리를 자신의 주요한 디자인 요소로 삼은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을 터. 여자의 몸과 가장 가까이 존재하는 옷, 란제리. 우리는 디자이너 아제딘 알라이아의 말을 마지막으로 기억해야 한다. “모든 아름다움의 근본은 몸이에요.”

Credit

  • Editor 이병호
  • Photo by imaxtree.com(런웨이)/getty images(셀렙)/ instagram
  • Art designer 진남혁
  • Digital designer 민경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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