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REER

김수민, 설령 그게 도망치는 일이더라도

김수민는 누구보다 빠른 속도로 인생의 변곡점에 도착했고 또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사람이다.

프로필 by COSMOPOLITAN 2024.04.04
스물한 살에 SBS 최연소 아나운서로 입사해, 스물네 살 여름 퇴사를 결정했다. 김수민는 누구보다 빠른 속도로 인생의 변곡점에 도착했고 또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사람이다. 그런 그가 스스로 이해할 수 없는 결정과 시간에 봉착한데도 ‘나를 위한 도망’을 부끄러워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재학 중 아나운서가 되셨죠. 최연소 입사 아나운서로도 유명했어요. 초등학교 때부터 열심히 했던미술을 뒤로하고 아나운서를 선택한 이유가 궁금했어요. 또 누구보다 빠르게 시험에 합격한 비결을 꼽아본다면요. (웃음)
대학교 2학년 때 배낭여행을 다녀왔는데 처음 ‘세상이 참 넓고 몰랐던 직업도 많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동안은 미술이란 세계에서만 살았으니까요. 중고등학교 때부터 말하는 걸 좋아했는데 선생님께서 “크면 기자나 아나운서를 해봐도 좋겠다”고 조언해주셨던 것들이 떠올랐죠. 대단한 계획보다도 눈앞의 것을 재밌게, 후회 없이 도전해보자 하는 생각이 더 컸어요. 식상한 말 같지만 운이 좋았던 것 같아요. 기적 같은 행운은 큰 불행과 같은 이치로 모퉁이를 돌아 맞닥뜨리듯 되는 것 같기도 해요. 그래서 사실 빠른 합격에 어떤 비결이 있을까 싶지만 굳이 뽑아보자면 '즐거움'을 말하고 싶어요. 저는 아나운서 준비 과정이 정말 재밌었어요. 매일 매일 설렜고요.

누구보다 빠르게 사회에 발을 들인 만큼 혹독하게 배우고 성장하셨을 듯해요. 작가님의 사회초년생 시절은 어땠어요?
미숙한 것이 많았어요. 상사와 대화하는 법도 몰랐고요. 완곡히 말하고 원하는 것을 끝내 사수하는 법, 이런 것들을 하나도 몰라서 혼자 끙끙 앓거나 오해받곤 했던 것 같아요. 모두에게 미움받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에 위축되기도 했던 것 같은데 누가 날 좋고 싫어하는 건 제 몫이 아니더라고요. 그걸 알고 나니 좀 자유로워졌어요. 끝끝내 나만 나를 싫어하지 않으면 되더라고요. 다행히 시행착오들을 겪으면서 점차 제 진심이 타인에게 통하는 것들을 느꼈어요. 그렇게 퇴사 후에는 절 진짜 알아주시는 분들만 남더라고요. 부족한 점 많은 사회초년생에게 따듯하게 대해 주셨던 사회 어른들께 감사해요.

SBS 아나운서로 일하면서 유튜브 채널 수망구를 열었어요. 방송만으로도 바쁘셨을 텐데 채널을 운영한 계기가 있었나요?
당시 유튜브가 막 떠오르면서 너나 할 것 없이 많은 아나운서가 개인 유튜브를 시작했어요. 아나운서가 작가와 PD 등 여러 가지 역할을 겸하며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시기가 올 거란 예측이 만연했죠. 언제나 앞서가진 못해도 뒤처지진 말자 생각하는 편이라, 하지 않는다는 선택지는 생각도 안 했던 것 같아요. 아무리 바빠도 일 잘하는, 감 떨어지지 않는 아나운서가 되려면 채널을 운영해야 한다고 판단했어요. 개인적으론 저라 사람도 TV보다 유튜브가 더 자연스럽고 편한 세대의 아나운서라고 생각했어요. 제 모습을 가장 자연스럽게 보여줄 매체였거든요.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뉴스부터 예능, 스포츠, 라디오 등 다양한 분야를 종횡무진했어요. 그러다가 돌연 퇴사를 선택했죠. 안정적인 커리어를 뒤로 한 채 내린 결정이라 궁금한 게 많았어요. 그 모든 소회를 책 <도망치는 게 뭐 어때서>에 담았다고요.
퇴사한 지 2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왜 퇴사한 거냐?”는 질문을 받아요. 이 책은 그에 대한 기나긴 설명이자 변명이에요. 스스로가 무슨 생각인지도 모를 만큼 정신없이 결정하고 무작정 도망친 게 저의 퇴사였어요. 돌이켜보니 누가 뭐라고 해도, 또 누군가를 영원히 이해시키지 못한데도 저에게는 참 정직했던 선택이더라고요. 우리가 자신을 100% 이해하지 못한 채로 어떤 선택을 하고, 때로 손가락질받거나 실패한 듯 보이더라도 ‘나를 위한 도망’을 부끄러워하지 말자는 다짐을 책으로 쓰게 되었어요.

현재 언론대학원과 인문학 아카데미 건명원에서 공부 중이죠? 만삭인 채로 대학원 면접을 보러 가던브이로그가 인상적이었어요. 인생의 경험과 고민을 정조준해 선택한 공부에 대해서 만족하나요?
방송하는 내내 실용적인 공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했어요. 전문지식을 배워서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삶 말이에요. 그래서 퇴사 후 로스쿨 시험을 준비했는데 실패했어요. 그러다가 우연히 언론대학원 모집 공고를 보게 되었고 임신 막달에 면접을 봐서 합격했어요. 처음에 세운 계획은 어그러졌지만 제 선택으로 제 인생이 채워지고 있어서 좋아요. 올해 상반기까지도 너무 많은 일을 동시에 하면서 정신없이 보낸 터라 이런 말을 하기엔 민망한데요. (웃음) 올해 하반기는 정말 저 자신의 내면에 집중해보려고 해요. 아무것도 하지 않아서 뒤처지는 것 같은 기분, 무료한 기분, 세상에서 동떨어진 기분을 최대한 깊게 느끼고 사유하면서 쓸데없는 시간을 보내보려고요. 그것도 노력해야 한다는 게 참 모순이지만. 한 번쯤 그래보고 싶어서 건명원에 가게 됐어요. 무작정 무언가 읽고 답을 모르는 것을 물어가며 교수님들 말씀을 경청하면서 저 자신을 더 깊이 알아가고 있어요. 사람이 살아온 세월은 숨길 수가 없어서 어른이 되면 가만히 있어도 살아온 바를 풍기게 되잖아요. 괜찮은 향기를 내는 어른이 될 수 있는 깊이와 내공을 기르고 싶어요.

퇴사 이후에 결혼과 출산, 육아를 통해 인생의 새로운 궤도에 도착했어요. 앞서 말한 괜찮은 향기를 내는 어른에는 부모도 포함되잖아요.
퇴사하고 이제 좀 남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 생각하던 차였는데 출산 후 다시 타인과 나를 '비교'하고 주위를 둘러보게 되더라고요. 제가 미처 몰라서 아이에게 못 해주는 것들이 '죄'가 될까 봐, 부족한 부모인 것이 될까 봐 걱정되는 마음이었던 것 같아요. 지금은 완벽한 부모가 아닌 언제나 믿을 수 있는 부모가 되려고 하고 있어요. 자식으로서 저의 부모님께 가장 감사한 점은 언제나 저를 믿어 주신다는 것이었거든요. 그것이 제가 저의 부모님을 신뢰하는 배경이기도 하고요. 저도 아이를 믿어주고 아이도 저를 믿어줄 수 있도록 단단한 사람이 되려고 해요. 그리고 아이에게 더 나은 세상을 선물하고 싶다는 마음도 커졌기에 사회에서 제 몫의 최선을 다하고 싶어요. 우리 사회가 더 나아질 수 있는 방향으로요.

혹 퇴사나 새로운 도전을 앞둔 사람에게 조언을 전한다면, 어떤 말을 먼저 해주고 싶나요?
도망치고 또 도망친대도 '내 삶'이라는 건 변하지 않더라고요. 하늘이 무너진 것 같은 날에도 어김없이 밤은 오고 다음 날이 밝아요. 세상은 가끔 나와 무관하게 흘러가죠. 세상과 무관해지는 것을 너무 두려워하지 마세요. 상황이나 기분 이외에 다른 것은 아무것도 변하지 않으니까요. 결국 그냥 어제와 같은 내 인생이 계속될 뿐이에요. 살아 있다면 그것으로 아주 기특하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엄마가 되어보니 사람이 얼마나 작고 연약하게 태어나 삶을 시작하는지 보이더라고요. 건강히 살아있는 것 외에 사람에게 더 바랄 게 없다는 것이 요즘 생각이에요.

작가 김수민 님에게 물었습니다!

🔍 영감이 떠오르지 않을 때 즐겨 찾는 사이트 또는 인스타그램 계정은?
나영석 PD님의 오랜 팬이예요. 채널 십오야 유튜브를 열심히 봅니다. 재재님과 문명특급 팀도 좋아하고요. 창의적이고 유연한 사람들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무례하지 않은 유쾌함도 정말 중요하게 생각해요. 그게 참 어려운 건데 그걸 멋지게 해내는 프로듀서 분들을 좋아해요.

🔍 하루 평균 인스타그램 또는 타 SNS 사용 시간은?
유튜브를 많이 봐요. 인스타그램까지 도합 하루에 한 시간씩은 보는 것 같아요.

🔍 폰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앱 3개는?
카메라, 인스타그램, 비트윈. 저희 부부는 비트윈을 쓰거든요.(웃음)

Credit

  • Freelance Editor 유승현
  • Photo 개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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