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도 주식처럼 하락장이 온다? 연애 심리 총정리 #러브이코노믹스
눈 앞의 손실을 당장 해결하고 싶은 마음은 이해하지만, 그 시간에 내 몸과 마음을 가꿔보자. '러브 가드닝' 기술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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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상반기, 국내 증시는 그야말로 미친 시장이었다. 지난 6월 22일, 코스피는 9,114라는 전인미답의 고지를 찍었다. 반도체 슈퍼사이클은 이제 시작이라며, 12,000, ‘15,000스피’도 금방이라며, 온 시장이 흥분했다. 하지만 환희는 아주 짧았다. 시장은 급격하게 오른 만큼 빠르게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잠깐의 조정일 거라 생각했던 하락은 한 달 내내 끝도 없이 이어졌고, 7월이 끝나갈 무렵 코스피는 고점 대비 40%가 넘게 밀렸다. 신용이나 미수를 이용해 산 주식은 순식간에 강제 청산됐고 나를 포함해 많은 사람의 계좌도, 멘털도 반토막이 났다. 그런 상황에서 나는 무엇을 했을까? 손절? 추가 매수? 아니, 나는 우리 집 화단에 있는 방울토마토의 곁순을 땄다.
방울토마토는 햇빛과 물만 있으면 잘 자라는 키우기 쉬운 작물이지만, 열매를 더 많이 얻기 위해서는 ‘곁순 따기’라는 작업을 꼭 해줘야 한다. 본 가지 사이사이에 나는 곁순을 따주지 않으면 열매는 잘 맺히지 않고 실속 없이 잎만 무성하게 커버리고 만다. 더 잘 키우기 위해 잘라내야 하는 것. 가드닝의 세계에는 이런 아이러니가 있다. 의아하게 들릴 수도 있다. 그 당시 내 계좌에서는 하루에 1천만원씩 돈이 사라지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방울토마토 곁순이나 따고 있을 수 있었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나는 조정장에서 가장 먼저 손절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건 바로 ‘조급함’이다. 투자를 잘하던 사람들도 올해 여름 같은 조정장을 맞이하면 이성을 잃게 된다. 이성을 잃으면 무리하게 신용으로 물을 타거나, 혹은 지레 겁먹어 ‘패닉셀’(투자자가 공포로 인해 주식을 급하게 매도하는 것)을 하게 된다. 더 떨어질까 봐 무서워 마이너스 종목들을 지금이라도 싹 팔아버리고 싶은 마음, 지금이 저점이라고 생각해 무리하게 떨어지는 칼날을 잡아버리고 마는 실수, 빨리 오를 것 같은 급등주를 찾아 손실을 만회하고 싶은 욕심. 나도 잘 안다. 하지만 그런 마음은 계좌를 더 크게 망친다. 가만히만 있었어도 복구할 수 있었을 손실을 영영 회복 불가능한 상태로 만들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우리의 사랑에도 반드시 이런 조정장이 찾아온다. 기쁨과 환희의 최고점을 찍은 사랑이 어느 순간 완만한 내리막을 타면 설렘은 줄고, 말투 하나하나가 다 거슬리고, 섹스도 예전처럼 짜릿하지 않다. 싸움의 간격은 짧아지고 화해까지 걸리는 시간은 길어지고. 그럼 생각하는 것이다. ‘우리 이대로 괜찮나?’ 그럴 때 우리는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전과는 다른 행동을 하기 시작한다. 여행을 떠나기도 하고, 투정을 부려보기도, 진지한 대화를 해보기도 한다. 문제는 우리가 관계를 회복시키기 위해 하는 이런 행동들이 오히려 관계를 악화시킨다는 것이다. 조금만 노력하면 좋았던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고 믿기에 자꾸 마음이 급해진다. 하지만 조급한 물타기와 손절은 백전백패다. 이럴 땐 ‘패닉셀을 막기 위한 기계적 행동 강령’이 필요하다. 당신의 사랑이 흔들리는 것 같다면 생각 빼고, 감정 빼고, 가능하다면 뇌도 잠깐 빼고, 다음 스텝을 기계적으로 밟아보자.
첫 번째, 문제가 생겼다면 일단 거래를 정지시키자. 주식시장에는 시장이 폭락하면 일정 시간 거래를 중단시키는 ‘서킷 브레이커’가 있다. 우리 사랑에도 서킷 브레이크를 걸어보자는 거다. 보통 관계가 삐걱거리기 시작하면 비중이 더 늘어난다. 평소보다 뚱뚱한 카톡을 보내고, 몇 시간씩 전화하고, 급기야 집 앞에 찾아가기까지. 섣부른 물타기다. 제대로 된 투자자라면 지금 당장 이 사안을 해결하고 싶은 본능을 거슬러야 한다. 너무 따지고 싶고, 당장 결론을 내고 싶을 때 일단 24시간만 멈춰보자. 감정이 격해져 있는 상황에서는 제대로 된 사태 파악이 불가능하다. 그때 내린 이별 결정은 합리적 손절이 아니라 패닉셀, 세상에서 가장 후회하기 쉬운 매도다.
두 번째, 그럼 멈춘 24시간 동안 무엇을 하냐고? 몸을 움직여보자. 무작정 나가서 걸어도 좋고, 테니스장이나 수영장에 가서 땀을 흘려도 좋다. 집에서 나가기 힘들다면 집 정리라도 해보자. 정신은 생각보다 신체에 쉽게 끌려다닌다. 움직이는 동안 주변의 풍경이 달라지면 생각도 달라진다. 지금 당장 싸우고 싶은가? 전투를 벌이고 싶은가? 그 에너지를 또 다른 육체 활동에 쏟아보자. 열에 아홉은 처음보다 마음이 차분해질 것이고,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건강해진 몸과 깔끔해진 집은 남을 테니.
세 번째. 파트너의 인성 검사 전에 내 신체검사가 먼저다. 나는 지금 내 파트너와 5년째 좋은 관계를 잘 꾸려나가고 있다. 우리도 가끔 삐걱거리지만, 오래가지 않는다. 나는 내 몸의 소리를 매우 귀 기울여 듣기 때문이다. 10년 전의 나는 관계에 문제가 생기면 문제의 원인을 ‘관계 자체’에서 찾았다. 전부터 거슬렸는데 권태가 올 타이밍이 됐다거나, 예전엔 안 그랬는데 그가 변했다거나 하는 것들. 하지만 지금은 그와 삐걱거리는 구간이 오면 먼저 내 신체 컨디션을 확인한다. 잠은 충분히 잤나? 밥은 제대로 먹었나? 일을 너무 몰아서 하지는 않았나? 갈등이 진짜로 관계 자체의 문제일 때도 있었지만 체력적인 부침이 원인인 경우도 많았다. 요즘은 그런 때가 오면 파트너에게 솔직하게 말한다. “피곤하니 잠들 때까지 옆에 있어줘.” “고칼로리가 필요해. 엽떡에 치즈 추가해서 시켜줘.” 푹 자고, 맵고 짜고 뜨거운 것을 먹고 나면 조금 전까지 신경을 긁던 그의 숨소리가 다시 포근해진다. 사랑의 위기인 줄 알았는데 실은 탄수화물 부족이었던 것이다. 모든 갈등을 “내가 피곤해서 그래”로 덮으라는 얘기는 절대 아니다. 다만 내 컨디션이 바닥인데 상대의 펀더멘털부터 의심하지는 말자는 것이다.
네 번째, 이제는 본격적인 분석을 해야 할 때.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고, 사람은 자신의 사랑을 객관적으로 볼 수 없다. 그러니 주변에 조언을 구해보자는 것이다. “둘 사이의 일은 둘이 해결해야지”라고 말할 수도 있겠으나, 인간이 괜히 사회적 동물이겠는가. 나보다 먼저 망해본 사람, 다른 방식으로 사랑해본 사람, 제3자의 이야기는 분명 쓸모가 있다. 다만 내 절친 3명에게만 물어보고 “여론도 헤어지래”라고 결론 내리는 것은 곤란하다. 이해관계와 위치가 다른 세 사람에게 조언을 구하자. 내 친구 한 명, 상대의 친구 한 명, 둘과 아무 상관없는 사람 한 명 정도면 좋다. 이때 중요한 것은 질문하는 방식이다. “걔가 나한테 이렇게까지 했는데 미친 거 아니야?”라고 물으면 돌아오는 답도 이미 정해져 있다. 객관성을 담보해 말하고, 들을 때도 내가 원하는 답만 골라 듣지 말 것. 그런데도 세 사람의 의견이 모두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면, 사랑에 눈먼 나보다 시장이 먼저 위험 신호를 감지했을 가능성이 높다.
마지막. 파트너 추가 매수를 잠시 멈추고 ‘자사주 매입’을 실시하자. 파트너에게 돈 쓰기를 잠시 멈추고 그 돈과 시간과 정성을 당신에게 돌리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좋은 것을 해주고 싶은 마음은 당연하다. 하지만 리밸런싱 기간에는 자금의 흐름을 바꿔볼 필요가 있다. 늘 상대가 좋아하는 식당을 예약했다면 이번에는 당신이 좋아하는 식당으로 가라. 애인을 위해 선물을 샀다면, 이번엔 당신의 식탁에 꽃을 꽂자. 좋아하는 전시를 보거나, 공연을 보거나, 혼자 여행을 떠나도 좋다.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가성비’를 절대로 생각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소비는 사치가 아니라 관계의 리트머스지를 구매하는 비용이다. 상대에게 쓰던 시간과 돈과 정성을 나에게 돌려줬을 때 삶이 훨씬 편안해진다면? 그건 그동안 사랑의 비중이 지나치게 컸다는 뜻이다. 반대로 내가 나를 잘 돌보는데도 여전히 그 사람이 보고 싶고, 그 사람과 함께한 시간이 내 삶을 더 풍성하게 만든다면 그 사랑의 펀더멘털은 아직 살아 있을 가능성이 크다.
투자와 사랑을 하다 보면 조정과 하락은 반드시 찾아온다. 아무리 대비해도 피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런 순간마다 가지를 전부 다 잘라내고 “다시는 투자 안 해!”, “다시는 사랑 안 해!”를 외친다면 우리는 매번 텅 빈 화분 앞에 서 있을 수밖에 없다. 좋은 열매를 수확하고 싶다면 흔들릴수록 근본으로 돌아가자. 눈앞의 손실을 지금 당장 해결하고 싶은 조급함을 잘라내고, 공들여 당신의 몸과 마음을 가꾸어보자. 머지않아 훨씬 화사하고 풍성해진 정원을 만날 수 있을 테니.
Credit
- 에디터 김미나
- 글 니주(작가)
- 일러스트레이션 서이
- 아트 디자이너 김진림
- 디지털 디자이너 유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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