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젝트 헤일메리], [햄넷], [녹나무의 파수꾼] 소설이 영상이 되는 이유
요즘 히트작의 공통점, 결국 원작 소설이다? 영화와 드라마로, 또 애니메이션으로 재탄생하는 소설이 가진 무한한 잠재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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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자들이 영상으로 펼쳐진다. 오직 책 안에서 평면적으로 존재하던 것들이 입체적인 장면으로, 주인공의 살아 숨 쉬는 감정으로, 역동적인 세계관으로 태어난다. 글을 읽고 상상한 이미지를 머릿속에 상영시키는 게 소설이라면, 영화는 연출자가 구현한 공간에 초대받아 공감각적 자극 사이를 자유롭게 활보하는 일이다. 두 활동은 서로 다른 영역에 서 있지만, 독자와 관객이 완전한 하나로 통합되고, 비로소 생생한 감각을 전이받을 수 있도록 상호 보완한다. 때때로 종이와 화면은 무엇이 나은지 경쟁적 관계로 비쳐지곤 한다. 온전히 독자 자율에 맡긴 상상이 더 풍부한지, 음악과 미술, 촬영과 스토리 등 많은 요소를 종합한 영상 예술이 더 다채로운지. 그러나 동일한 이야기에서 출발한 둘은 뿌리 깊은 나무처럼 내밀하게 연결돼 있다. 그렇다면 텍스트와 비디오는 서로의 퍼즐을 맞춰나갈까?
온라인 서점 ‘예스24’ 베스트셀러 1위로 <프로젝트 헤일메리>가 이름을 올렸다. 4주 연속이다. 심지어 국내 도서 종합 베스트 1위. 전 장르를 통틀어 최고 판매량을 선보인 것이다. <프로젝트 헤일메리>의 인기에 힘입어 소설가 앤디 위어의 전작인 <아르테미스>와 <마션> 또한 각각 18위와 24위를 차지했다. 가장 최근작인 <프로젝트 헤일메리>가 2021년 발간되고, <마션>이 2015년, <아르테미스>가 2017년에 발간됐으니 이 역주행은 시간을 초월한 대중의 선택이라 할 수 있다. 소설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692페이지에 달하며 ‘벽돌책’이라는 별명이 있다. 길고 긴 페이지 안에는 죽어가는 태양을 구하기 위해 행성 간 감염병 원인을 파악하고 해결책을 찾아내는 과학자 ‘그레이스’(라이언 고슬링)의 우주 고군분투기가 담겨 있다. 그 사이에 외계인 ‘로키’를 만나 귀여움과 서글픔이 뒤섞인 굴곡진 우정이 서사의 온도를 올린다. 사실 영화 버전의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벽돌책으로부터 많은 것을 생략하고 삭제했다. ‘그레이스’와 ‘로키’의 관계에 집중하기 위해 지구에서 인간이 벌이는 처참한 상황들, 가령 빙하기를 늦추기 위해 직접 지구온난화를 가속화하는 기후학자의 모멸스러운 모습이나 빙하를 일부러 폭파시키는 비탄 어린 인류의 풍경은 완전히 지워졌다. 그럼에도 영화가 세계적 흥행을 경신할 수 있었던 것은 2시간 30분의 러닝타임이라는 영화적 한계를 인정하고 선택과 집중의 중요성을 완전히 이해했기 때문이다. 대서사를 영화로 옮기는 과정에서 너무 많은 것을 보여주느라 여러 샛길에 빠진 영화들을 생각하면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과감한 결단을 내린 셈이다. 게다가 원작 소설이 보여주지 않은 빈틈을 파고드는, 후발 주자인 영상만이 전할 수 있는 오락적 미덕을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톡톡히 지켜냈다. 외계인 ‘로키’의 시야가 어떤 모습인지 자세히 묘사돼 있지 않은 소설과 달리, 영화는 그의 어두운 시선을 여러 차례 보여주었고, 그렇기에 두 존재가 마침내 이뤄낸 언어 소통이 얼마나 가치롭고 귀한 일인지 그 무게를 역설적으로 알려주었다.
원작 소설에서 궁극적으로 가장 중요한 감정에 집중한 영화가 또 있다. 세계적 극작가 ‘윌리엄 셰익스피어’(폴 메스칼)와 그의 아내 ‘아녜스’(제시 버클리)의 이야기를 다룬 <햄넷>이다. <햄넷>의 원작 소설 <햄닛>은 시대를 뛰어넘는 명성과 달리 여전히 미스터리하게 남아 있는 셰익스피어의 삶을 상상한 픽션이다. 소설가 매기 오패럴은 “과거 스트랫퍼드 지역에서 햄넷과 햄릿은 사실상 같은 이름으로 혼용됐다”는 문장을 보고 실제 셰익스피어 아들의 이름이 햄넷이라는 사실을 떠올렸다. 이어 11살 난 아들이 흑사병으로 목숨을 잃은 후 비극 <햄릿>을 집필했다는 사실까지 함께 엮으며 소설의 출발점을 완성했다. 그간 셰익스피어의 예술적 삶과 작품을 조명한 소설들과 달리 <햄닛>은 오히려 그의 아내 아녜스를 주인공으로 내세우며 비극의 방향을 정면으로 따라간다. 클로이 자오 감독은 영화 <햄넷>을 각색하고 연출하는 과정에서 원작 소설을 크게 변형하지 않는다. 원작의 울타리 안에 머물되, ‘아녜스’의 출산 과정을 노골적으로 그려내면서 ‘모성애’를 미화하기보다 현실 영역으로 이끌어낸다. 진동을 통해 드러나는 야생적인 여자의 포효와 울부짖음. 공감각적 장면으로 소생된 소설은 납작한 모성애에 지쳐버린 관객이 현대적 가치를 충분히 이어나갈 수 있도록 만든다. 특히 모든 게 절정에 다다른 연극 장면에서 배우의 손을 마음대로 잡아버리는 ‘아녜스’의 충동적 행동은 무지나 미련스러움이 아니라, 오직 슬픔을 통과해본 자만이 알고 있는 연대로 작동한다. 소설에 없던 장면이 영화에 더해진 덕에 우리는 아이를 잃은 고난을 예술이 어떻게 승화시키는지, 그리고 그 자리에 함께 있는 관객이 그것들을 어떻게 나눠 가지는지 목도하게 된다. <햄넷>이 펼쳐진 스크린 앞에서 우리는 모두 시나브로 깊은 슬픔의 목격자가 되고 증인이 된다.
소설이 애니메이션화된다면 어떨까? <용의자 X의 헌신>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등으로 일본 현지뿐만 아니라 국내에서도 많은 사랑을 얻은 히가시노 게이고 작가의 소설이 처음으로 애니메이션으로 거듭났다. 그렇다면 문득 궁금해진다. 원작 소설의 어떤 특징이 (일반적으로 많이 제작되는) 실사화가 아니라 애니메이션에 적합했을까? <녹나무의 파수꾼>은 어릴 적 어머니를 여읜 뒤 불합리한 이유로 공장에서 잘린 ‘나오이 레이토’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다소 어수룩한 ‘레이토’는 친구의 꾐에 넘어가 회삿돈을 훔치려 계획하지만 결국 경비원에게 걸려 현장에서 체포되고 만다. 인생이 완전히 끝났다고 낙담하는 순간, 일면식 없는 변호사가 그를 구제해준다. 그리고 진짜 도움의 손길은 어머니의 이복 언니이자 대기업 야나기사와 그룹의 리더 ‘야나기사와 치후네’로부터 왔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때 예상치 못한 ‘치후네’의 명령 비슷한 부탁 한마디. “녹나무의 파수꾼이 되세요.” 일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월향신사에 머무르며 녹나무를 찾는 사람들을 안내하는 것. 신성하고 미스터리한 녹나무에는 사람들이 잘 모르는 비밀이 하나 있었으니, 바로 이 나무에 소원을 남긴 사람은 그가 죽고 나서도 가족 구성원과 환상 속에서 삶을 통째로 주고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무려 타인보다 이해하기 어려운 가족을 영험한 힘으로 이해할 수 있는 기회인 셈이다. 사실 소설에서는 이 과정에서 다소 복잡한 ‘예념’과 ‘수념’의 개념이 등장한다. 예념이 자신의 삶을 녹나무에 보관하듯 맡기는 행위라면, 수념은 그 맡겨진 마음을 읽는 일이다. 여기서 원작은 영상화를 위해 필연적으로 2가지 미션을 얻는다. 첫 번째, 어려운 개념을 쉽게 이해시킬 것. 두 번째, 가족 구성원의 진짜 감정과 마음을 깨달은 사람들의 충격과 변화를 제대로 묘사할 것. 현실과 거리가 먼 판타지가 휘황찬란한 시각적 이미지로 형상화되기 위해서는 빛과 색채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고, 그 활용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장르여야만 한다. 그건 역시나 애니메이션이다. 애니메이션으로 구현된 녹나무의 장엄함, 월향신사의 신비로움, 무엇보다 잘생긴 ‘레이토’의 외형까지(매우 중요하다!) 원작 소설은 제 이야기를 극적으로 가장 잘 풀어낼 형식을 성실히 찾아냈다.
아직 공개 시기가 한참 남았지만, 전 세계적으로 기대를 모으는 시리즈도 있다. 바로 HBO의 <해리 포터>. 2001년부터 2011년까지 10여 년 동안 제작된 영화 <해리 포터> 시리즈에 이어, 마법 소년의 모험담이 드라마로 재탄생한다. 방대한 소설을 각색하느라 다소 짧고 뭉뚝했던 영화 버전과 달리, 시리즈는 모든 이야기를 디테일하고 세세하게 다뤄낼 것으로 예상된다. 보다 원작 소설에 밀착된 <해리 포터>의 세계관은 어떨까? 인종 다양성을 기반으로 이뤄진 배우들과 영화음악의 마스터피스, 한스 짐머의 합류가 기대를 올린다. 소설은 이제 책으로만 머무르지 않는다. 페이지를 뛰어넘어 화면과 스크린으로 탄생하는 이야기는 언제나 다양한 얼굴과 표정으로 사람들 곁에 머문다. 이야기가 영화로도, 드라마로도, 공연으로도 모든 경계를 유연하게 넘나들 수 있는 것은 소설이 스스로를 한계 짓지 않기 때문이다. 소설의 가장 중요한 속성은 결국 무엇이든 되고 싶고,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점이기 때문이다.
Credit
- 에디터 천일홍
- 글 이자연(<씨네21> 기자
- 대중문화 평론가)
- 사진 INSTAGRAM(<해리 포터>)·IMDB(그 외)
- 아트 디자이너 장석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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