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UTY

추억 속 엄마 화장품 베스트 10

엄마의 손끝에서 전해지던 향기와 감촉이 감각으로 남은 것들. 엄마로부터 전해진 화장품은?

프로필 by 정유진 2025.05.22

엄마가 대학 시절 장소에 구애 없이 파우치에서 꺼내 쓱싹 뿌렸던 캔 미스트, 화장대 앞에서 우아하게 손가락에 퍼 올리던 녹진한 크림, 뷰티 매장이 들어선 백화점 1층을 압도하던 고급 유리병. 익숙한 이 물건들은 ‘엄마 화장품’이라는 이름 아래 오랫동안 과거의 유산처럼 여겨져왔다. 젊은 세대에게는 낡고 구식이라는 인식이 따랐고, 촌스러운 패키지나 익숙한 향은 시대의 흐름에서 한 발짝 비켜선 듯한 인상을 주기도 했다. 그러나 그 제품들은 지금도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단순히 살아남은 것이 아니라, 새롭게 조명받으며 다시금 젊은 세대의 파우치 속으로 들어오는 중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1980~1990년대 당시 해외여행은 지금보다 훨씬 더 무겁고 멀게 느껴지는 꿈 같았다. 여권보다 ‘면세점’이 먼저 머릿속에 떠올랐고, 면세 쇼핑은 그 자체로 신분 상승의 상징이었다. 당시의 면세점은 단순한 유통 채널이 아닌 브랜드와 신분이 교차하는 통로였고, 그 공간 한가운데에는 언제나 랑콤, 시슬리, 에스티 로더, 엘리자베스 아덴이 자리했다. “그 브랜드를 쓴다”는 말은 곧 “그 세계에 속해 있다”는 선언과 같았다. 지금처럼 SNS로 인증할 수 없던 시절, 화장대에 놓인 제품 하나가 그 사람의 격을 말해주었다. 그 격을 포장한 건 브랜드의 마케팅이었다. “그 여자의 피부에는 비밀이 있다”, “8시간의 기적”, “밤사이, 변화가 시작된다”…. 이런 카피들은 단순한 제품 설명이 아니라, 여성의 욕망과 자기 계발 판타지를 교묘하게 자극했다. 한 병의 세럼, 한 통의 크림이 나를 ‘다른 사람’으로 만들어줄 것만 같았고, 그 믿음은 당시 엄마들이 지갑을 여는 가장 큰 구매 이유였다.

그리고 그렇게 등장한 화장품들이 있다. 엄마의 파우치에 오래 머물렀던 그 제품들은 지금도 그대로거나, 혹은 더욱 세련되게 진화한 채 우리 앞에 있다. 시대가 바뀌고, 유통 채널이 변하고, 뷰티 트렌드가 몇 번이나 회전한 지금도 이것들은 여전히 판매 순위 상위권에 있고, 매년 새로운 패키지와 임상 데이터로 ‘살아 있음’을 입증하고 있다. 알고 보면 이 제품들은 단순히 옛날 물건이 아니었다. 그것들은 오히려 완성형이었다. 피부과 의사와 함께 개발한 3단계 스킨 루틴의 상징인 노란로션부터 세계 최초로 ‘밤 전용 세럼’이라는 신개념을 만든 갈색병, 리포솜 기술을 대중화한 세럼, 1930년대에 탄생해 여전히 면세점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만능 멀티밤까지. 이 제품들에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기술과 콘셉트가 한 치의 어긋남 없이 완벽히 일치한다는 것. 그리고 그 가치는 시간이라는 시험대에서 증명됐다.

이 같은 흐름은 최근 소비 패턴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국내 최대 기내면세 채널, 대한항공 <스카이샵>의 송영은 MD는 이렇게 말한다. “예전에는 40~50대 여성들이 직접 구입했던 제품을 약 5년 전부터는 50~60대 남성들이 여러 개 번들로 구입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내와 딸에게 동시에 선물하기 위함이죠. 계속해서 롱런하는 제품이기 때문입니다.” 오랜 시간 사랑받아온 레거시 아이템이 세대와 성별을 뛰어넘어 신뢰받는 선물의 상징이 되고 있는 셈이다. 제품 하나에 담긴 기술과 신뢰, 시간은 결국 전 세대를 아우르는 공감으로 확장되고 있다.

이제 Z세대는 단순히 ‘새롭다’는 이유만으로 소비하지 않는다. ‘지속 가능성’, ‘검증된 기술력’, ‘이유 있는 롱런’ 같은 키워드에 반응한다. 그래서 오히려 ‘엄마 화장품’이 다시 돌아오고 있다. 그들은 엄마가 쓰던 화장품이라는 이유로 신뢰하고, 오랜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잘 팔린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변화보다는 지속, 자극보다는 밸런스를 중시하는 지금의 뷰티 신에서 이 전설적인 제품들은 비주얼이나 유행이 아니라 ‘정합성’으로 다시 선택받는다.

한 시대의 신분 상승 욕구가 투영됐던 제품들이 또 다른 세대의 이성적 소비 안에서 다시 살아나는 아이러니. 세대는 바뀌어도, 진짜는 남는다. 엄마의 화장품이 아직까지 살아남은 이유는 어쩌면 그것이 단 한 번도 퇴장한 적이 없기 때문 아닐까? 낡은 줄 알았지만, 사실은 앞서 있었던 것. 지금도 여전히 기술력으로 말하고 있는 것. 그러니 지금 당신의 화장대 위에 그 유리병이 다시금 하나쯤 들어와 있어도 좋다. 이번엔 ‘엄마 화장품’이 아니라 ‘나의 인생템’으로.

1 1990년대 당시 스킨 미스트 개념을 처음 정착시켰다. 프랑스 온천수 100%라는 단일 성분은 성분 미니멀리즘과 진정 효과라는 지금 트렌드와 완벽히 일치한다. 오 떼르말 1만원 Avène.

2 1968년 출시 후 2013년에야 첫 리뉴얼을 단행했다. 탄탄한 기초 처방이라는 레거시를 지킨 ‘믿음의 아이콘’. 드라마티컬리 디퍼런트 모이스춰라이징 로션 5만8천원 Clinique.

3 유산균 유래 성분을 세럼에 넣은 선구자로, 7일 만에 변화가 보인다는 명제 아래 프리바이오틱스 기술을 고급화했다. 최근엔 마이크로바이옴까지 다뤄, 피부 장벽과 유전자 발현에까지 접근하고 있다. 제니피끄 얼티미트 세럼 12만6천원 Lancôme.

4 펌프 일체형 이중 용기로 디자인 리뉴얼이 된 이후, 현재는 영양, 광채, 모공, 탄력, 장벽, 수분, 생기, 피부 보호까지 9가지 효과를 한 번에 누릴 수 있도록 업그레이드되었다. 더블 세럼 G9 18만9천원 Clarins.

5 럭셔리 뷰티의 상징인 시슬리는 이 제품 하나로 ‘진짜 비싼 건 절대 안 바뀐다’는 철학을 증명했다. 무려 43년 만에 성분 리뉴얼을 했다는 사실은, 그만큼 처음부터 완성도가 높았다는 증거다. 에뮐씨옹 에꼴로지끄 어드밴스드 포뮬라 20만원 Sisley.

6 K-뷰티의 신화. 자음단™이라는 고유 한방 포뮬러를 지속적으로 진화시키며, 한방이 ‘전통’이 아닌 ‘테크놀로지’임을 증명했다. 6세대까지 리뉴얼되며 글로벌 K-뷰티 시장을 대표하는 스킨 부스터가 됐다. 윤조 에센스 14만원 Sulwhasoo.

7 멀티밤의 원조. 캠핑 갈 때, 비행기 탈 때, 남편 면도 후에도 썼다는 범용성의 전설. 살리실산, 비타민 E 등 그때나 지금이나 유효한 성분 조합으로 ‘의외로 과학적’인 제품. 에잇아워 크림 스킨 프로텍턴트 4만2천원 Elizabeth Arden. 8 세계 최초의 ‘밤 전용 세럼’. 피부도 밤에는 회복한다는 이론을 최초로 제품화한 사례다. 여전히 22초마다 1병씩 팔린다. 어드밴스드 나이트 리페어 23만1천원 Estèe Lauder.

9 공식 수입 전부터 사재기 열풍을 일으킨 일본 스킨케어의 정수. 리포솜이라는 나노 전달 기술을 적용한 대표적 앰풀로, 2022년 리뉴얼 때는 자가 회복 능력까지 강조하며 더욱 진화했다. 리포솜 어드밴스드 리페어 세럼 타임 릴리즈드 멀티라멜라 리포솜 14만6천원대 Decorté.

10 비싼 만큼 효과도 ‘전설급’이라, 엄마들의 로망이자 면세점 전설로 군림해왔다. 여전히 똑같은 처방으로 팔린다는 점이 오히려 신뢰를 높인다. 크림 드 라 메르 31만2천원 La Mer.


Credit

  • Freelance Editor 오다혜
  • Photo By 김호연
  • Assistant 조영희
  • Art Designer 장석영
  • Digital Designer 장석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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