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진 울 소재의 클라이브 트렌치코트, 이어 커프로 연출한 브라스와 실크 새틴 소재의 듀오 청키 후프 이어링 모두 Loro Piana.
세계 최고의 공격수, 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선수, 축구라면 리오넬 메시 이상의 선수. 모든 게 세계 언론에서 김연경을 향해 던진 찬사예요. 한 분야에서 정상에 오른 이의 기분이 궁금해요. 그런 말을 들으면 어떤가요?
당연히 좋죠. 뿌듯하고요. 하지만 운동이라는 건 성적이 잘 나왔다가 안 나왔다가 하는 것이라, 그때그때 잘해내는 게 중요해 그런 말씀들엔 생각보다 무덤덤합니다.
그렇다면 ‘식빵 언니’라는 별명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해요?
음, 나쁘지 않아요. 올림픽 예선 한일전에서의 한 장면을 많은 분들이 좋게 봐주셔서 탄생한 별명이기 때문에 뜻깊죠. 누가 이렇게 비속어를 좋은 의미의 별명으로 써주겠어요? 하하. 많은 사랑을 받고 있구나, 체감해요.
캐시미어 소재의 티지아노 더블브레스티드 코트, 이어 커프로 연출한 브라스와 실크 새틴 소재의 듀오 청키 후프 이어링 모두 Loro Piana.
얼마 전 국가대표 은퇴식을 치렀죠. 세 번의 올림픽과 아시안게임, 세계선수권에서 활약하며 올림픽 최초로 ‘한 경기 30점 이상 득점 기록’을 4회나 세웠고, 런던 올림픽 MVP로 꼽히기도 했죠. 국가대표 명찰을 내려놓은 소감은 어떤가요?
세월이 야속하다고 할까요? 내가 벌써 나이가 들었구나, 이렇게 빨리 시간이 지나갔구나 싶어요. 부담도 압박감도 많았지만 주어진 순간에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홀가분합니다. 많은 분들에게 사랑받으며 은퇴할 수 있어서 좋아요.
오랫동안 기량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 반짝 정상에 올라간 이들은 많더라도, 그걸 오래 유지하는 사람은 많지 않거든요.
실크 소재의 마리아 재킷, 롭 베스트, 캐시미어와 버진 울 소재의 레잉가 트라우저, 브라스와 실크 새틴 소재의 듀오 체인 네크리스, 램스킨 소재의 앤톤 워크 로퍼 모두 Loro Piana.
버진 울 소재의 클라이브 트렌치코트, 이어 커프로 연출한 브라스와 실크 새틴 소재의 듀오 청키 후프 이어링 모두 Loro Piana.
이전부터 배구 꿈나무 장학금을 지원하는 등 유소년 배구 선수 육성에 뜻이 있었는데 이번에 김연경 재단, ‘KYK 파운데이션’까지 설립했어요. 앞으로 후학을 어떻게 길러낼 생각인가요?
제 장학금을 받고 지금 프로 리그에서, 혹은 국가대표로 뛰는 선수들을 보면 되게 신기해요. ‘야, 내가 장학금을 줬던 선수들이 이렇게 컸네?’ 싶고 뿌듯하죠. 이번 재단을 설립한 건 금전적인 도움뿐 아니라, 유소년을 발굴하며 도움을 주고 제가 경험한 것들을 많이 알려주고 싶어서예요. 배구뿐 아니라 여러 비인기 종목도 지원하고 싶습니다. 지원받은 친구들이 커서 또 다른 스포츠 선수들에게 좋은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이 제 바람이에요.
한국 배구팀이 부당한 일을 겪을 때마다 대한배구협회에 목소리 내 이야기했고, 많은 것을 변화시켰죠. 남녀 샐러리캡 차이에 대해 용기 있게 목소리 낸 덕에, 많은 이들의 관심을 환기하고 샐러리캡을 올리기도 했어요. 구조의 문제에 나서는 점이 멋지다고 생각해요.
그걸로 욕도 많이 먹었어요, 저. 하하하. 이제 2024년도인데 바뀌어야죠. 그때는 남녀 샐러리캡 차이가 너무 컸고, 물론 지금도 크긴 하지만 한국 여자 배구가 많이 좋아지고 있어요. 제가 예전에 받았던 연봉을 지금 선수들에게 받으라고 하면 말이 안 되는 거예요. 여전히 개선되고 발전해야 하는 부분도 많기 때문에, 앞으로는 또 다른 문제에 대해 말하려고 해요. 사실 선수 은퇴하고 나서 배구 일을 안 하면 더 편할 거예요. 계속하면 안 좋은 소리를 들어야 될 일도 많을 테니까. 그래서 가끔은 그만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결국 ‘배구쟁이’예요. 개선해야 할 것들이 보이니 어쩔 수 없죠. 한국 배구의 발전에 힘을 보탤 수 있는 역할을 하고 싶어요.
실크 소재의 마틸드 재킷, 이어 커프로 연출한 브라스와 실크 새틴 소재의 듀오 청키 후프 이어링, 브라스와 카프 스킨 소재의 커프 브레이슬릿 모두 Loro Piana.
김연경 선수를 보고 배구 선수를 꿈꾸게 됐다거나, 배구 팬이 된 경우도 정말 많죠?
취미로 배구를 하게 됐다는 사람들도 있어요.(웃음) 제게서 힘을 얻어 힘든 시간을 이겨냈다는 이야기를 편지로 써서 주시는 분들이 많은데, 저 역시 그런 얘기를 들을 때 많은 힘을 얻죠. 제 오래된 팬들이 있는데, 이제 그분들이 결혼하고 임신해서 태교를 배구로 한다거나, 애를 데리고 경기를 보러 온다거나 하시거든요? 되게 신기해요. 내가 오래 했구나라는 생각도 들고.
중학생 때만 해도 키가 170cm도 안 돼 세터를 했고 경기에 자주 나서지 못했죠. 지금은 192cm지만. 배구를 하기로 결심한 시점은 아직 키가 크기 전인데, 어떻게 배구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나요?
키가 생각처럼 자라지 않아서 그만둬야 하나 생각했어요. 많이 힘들었죠. 하지만 배구가 너무 좋았기 때문에 그저 훈련에만 매진했어요. 그러다 내가 커졌구나 생각 못 할 정도로 갑자기 팍 큰 거예요. 초등학생 때부터 친구인 김수지 선수는 초등학생인데도 커서 항상 제가 고목나무 매미처럼 매달려 있었거든요? 그런데 고등학생 때는 키가 비슷해져서 신기했어요.(웃음) 신체 조건이 되니 안 되던 스파이크나 블로킹도 잘되고, 신기하고 신이 났죠. 만화 같은 일이 벌어진 거예요.
실크 소재의 엘리사벳 셔츠, 이어 커프로 연출한 브라스와 실크 새틴 소재의 듀오 청키 후프 이어링 모두 Loro Piana.
축구도 좋아했지만 큰언니 덕에 배구에 입문한 뒤론 배구만 생각했던 것 같아요. 지금 생각해보면, 테니스 같은 개인 종목도 잘했을 것 같은데. 샤우팅하면서 라켓 치고. 하하하.
상상이 됐어요.(웃음) 어쨌든 키가 작았던 시절 덕에 수비 능력까지 갖춘 공격수로 성장할 수 있었죠.
하하. 맞아요. 저는 운이 되게 좋은 것 같아요. 초등학생 때는 세터를, 중학생 때는 수비를 하며 기본기를 다졌죠. 그리고 고등학생 때는 키가 갑자기 크면서 공격수의 스킬을 다질 수 있었으니까.
캐시 데님 소재의 토리노 재킷, 고센 트라우저, 브라스 소재의 카르도 핀, 램스킨 소재의 앤톤 워크 로퍼 모두 Loro Piana.
언니들한테 까불다 혼나기도 하고, 장난기가 너무 많고, 활발하고… 무서운 게 없는 애였어요. 하고 싶은 건 해야 하는. 부모님이 저를 풀어놓고 자율적으로 키우셨거든요. “밥 먹어” 그러는데 안 먹는다고 하면 “먹지 마~” 이러시고, “학교 가기 싫어” 이러면 “가지 마~” 이러시니 ‘뭐지….?’ 싶으면서 뭐든 스스로 열심히 하게 된 것 같아요. 제가 스스로를 쪼게 된 거죠.
네. 배구를 할 땐 많이요. 코트에 들어가면 승부욕으로 끓어오르죠. 다른 건 뭐, 지든지 말든지!
실크 소재의 마틸드 재킷, 버진 울 소재의 리오 트라우저, 카프 스킨 소재의 룸 L32 백, 램스킨 소재의 앤톤 워크 로퍼 모두 Loro Piana.
192cm, 한국 여자 배구 선수 중 역대 최장신 아웃사이드 히터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키가 크면 거의 미들 블로커, 양효진이나 김수지 선수의 포지션을 시켜요. 키가 커야 블로킹을 잘할 수 있거든요. 그런데 저는 어릴 때 작은 키 때문에 리시브도 많이 했기 때문에 사이드 공격수를 할 수 있게 됐죠. 앞으로도 키 큰 공격수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이렇게 피지컬이 압도적으로 좋으니 어딜 가나 사람들이 알아보는, 눈에 띄는 사람일 것 같아요. 한국에서 키 큰 여성으로 산다는 건 어떤가요?
일단 튀죠. 얼마 전 196cm인 농구 선수 박지수 선수랑 만나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사람이 너고 두 번째가 난 것 같다”고 얘기했는데, 진짜 궁금하긴 합니다. 우리나라 키 큰 여자 중에 제가 몇 번째 손가락에 들어갈지. 저도 가끔은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고 싶으니까 모자도 깊게 눌러쓰고, 마스크도 써보고, 고개도 숙이고 다니지만, 맞아요. 다들 알아보세요. 전혀 감춰지지 않아요.(웃음) 그래서 그냥 대놓고 편하게 다닙니다.
캐시미어 소재의 네이피어 터틀넥 Loro Piana.
10대 후반부터 키가 자랐으니, 그런 시선에 익숙하기도 하겠어요.
어릴 때는 키보단 머리가 짧고 보이시하니 여자 교복 입고 돌아다니면 다 쳐다봤어요. 여자 화장실 들어가면 놀라고, 목욕탕 가면 남자 키 주시고. 하하. 뭐 그 관심을 즐겼던 것 같기도 하고요.
자신의 신체 조건 중 제일 마음에 드는 건 뭐예요?
키요.(웃음) 살면서 불편할 때도 많지만, 배구 선수로서 가장 강력한 장점이죠. 뭐, 요즘엔 바지는 밑단 다 뜯어서 입고, 상의는 오버사이즈가 많이 나와서 또 괜찮아요.
캐시미어 소재의 네이피어 터틀넥, 캐시미어와 버진 울 소재의 리제 스커트, 램스킨 소재의 앤톤 워크 로퍼 모두 Loro Piana.
레터링 타투 ‘Sicut erat in principio’는 라틴어로 ‘처음과 같이’라는 뜻이라고. 당신에게 초심이란 어떤 의미인가요?
어릴 때 제가 한 첫 타투인데, 나중에 큰 선수가 되더라도 지금의 마음을 잃지 말자는 마음으로 새겼어요. 내가 어떤 마음으로 배구를 시작했는지 잊지 말자. 지금에 안주하지 말고 계속해서 나아가자. 자만하지 말자.
스포츠는 신체 능력이 중요한 만큼 과거의 나와의 싸움인 것 같기도 해요.
맞아요. 선수에겐 기록이 중요하니까. 저도 예전 영상들을 보면 ‘야 씨, 미쳤는데?’라는 생각을 할 때가 있는데.(웃음) 지금의 성숙한 마인드나 노련한 기술은 그때는 없었던 것이죠. 저는 전성기를 오랫동안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어요. 많은 분들의 기대에 부응하고, 저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더 잘하려고 애썼죠. 팬들은 계속해서 더 잘하는 선수를 보고 싶을 거잖아요. 그들의 사랑에 응답하고 싶어서 저는 지금까지 올 수 있었어요.
사람들이 김연경에게 하는 가장 큰 오해는 뭔가요?
센 언니. 저 여린 면도 많아요. 경기할 땐 인상을 탁 쓰기도 하고 이겨야 하니까 세게 나가 강해 보이는데, 배구를 안 할 때는 세심하고 남을 많이 신경 씁니다. 하하하.
자꾸 일을 벌이는 사람. 현재의 나에게 만족하지 않고 계속해서 성장하고 싶어 하는 사람입니다. 제가 지금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생활체육지도학과 24학번이거든요? 행정 쪽에도 관심이 있어서 기웃거리고 있고요. 재단을 운영하면서 PPT 만드는 것도 배우고 있어요. 직접 해보고 싶어서요. 배구 종목에서는 아무도 재단을 만든 적이 없는데 제가 하고 있고, 이런 걸 사서 고생한다 하죠. 하하.
실크 소재의 마리아 재킷, 롭 베스트 모두 Loro Piana.
이젠 좀 부드러워졌지만, 여전히 강성이긴 하죠. 배구를 할 때는 특히요. 훈련량이나 태도, 자기 관리에 대해서는 조금도 타협하고 싶지 않아요.
제 삶에 대해서는 별로 없어요. 음, 여전히 강한가 봐요. 하하하.
자기 일 잘하는 사람, 그리고 잘 보이는 사람. 꾸밈없는 걸 좋아해요. 속을 모르겠는 사람은 좋아하지 않습니다. 가식적인 건 멋이 없다고 생각해요.
어렵네요. 저는 제가 틀릴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많은 사람의 얘기에 귀 기울이죠. 그래서 제가 믿는 건 ‘나만 옳지는 않다’입니다.
버진 울 소재의 포스터 코트, 캐시미어 소재의 터틀넥, 버진 울 소재의 에밋 트라우저, 이어 커프로 연출한 브라스와 실크 새틴 소재의 듀오 청키 후프 이어링, 브라스 소재의 카르도 핀, 버진 울과 카프 스킨 소재의 엑스트라 L27 백, 램스킨 소재의 앤톤 워크 로퍼 모두 Loro Piana.
제가 여고를 나왔거든요. 여자들한테 인기 많은 타입이라는 건 오래전부터 알았죠. 밸런타인데이 때는 초콜릿이, 빼빼로데이 때는 빼빼로가 제 책상 위에 쌓여 있으니까. 하하하. 배구를 한다는 게 멋져 보였나 봐요. 제 생각에 여자분들이 자기가 하고 싶은 걸 잘하는 여자를 봤을 때 ‘아! 저 언니다!’ 하는 게 있는 것 같아요. 나이가 많든 적든 언니라고 부르고 싶어지는 포인트가 그거 아닐까요? 할 말 못 할 말 가리지 않고, 쓴소리도 하고, 당당한 모습이 지금 여성들이 바라는 여성상인 것 같아요. 여자도 더 말할 수 있고, 앞장설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사람.
그것뿐만은 아닐걸요. 팬들과의 버블 메시지를 봤는데 “행복한 순간에 생각이 나서 연락해” 같은 ‘심쿵’ 멘트 장인이던데요. 원래 ‘유죄인간’인가요?
그럼 뭇여성들의 수많은 청혼에 어떻게 대응할 건가요?
여러분, 감사합니다. 저로 괜찮겠어요? 하하하.